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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관계 ‘친구’
특집-'친구'를 생각하다
[246호] 2020년 09월 01일 (화) 전영혜 @

“희망 많기는 저 사람,
수려하기로는 저 사람,
친구 많기는 저 사람 같기를.

이렇게 남의 재주와 권세를 부러워하는 나를 보며 경멸하다 그대를 떠올리면 적막한 대지를 박차고 올라 천국 문 앞에서 노래하는 종달새가 되네.”


셰익스피어가 인생, 사랑을 말한 시(詩) ‘소네트’ 29번의 일부로, 셰익스피어가 평생 흠모하며 지내온 친구이자 후견인을 보며 쓴 구절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하는 이 시를 노년의 셰익스피어와 리즐리 백작이 만나 주고받던 장면이 영화 <올 이즈 트루>에 인상적으로 나온다.
친구란 무엇일까. 사랑스럽고 삶의 자극이 되어 방향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친구가 아닐까.

Key person, 친구
우리가 새로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대처해나가는 힘과 용기는 어디서 올까. 부모를 비롯해 그 힘이 되는 사람들을 상담학에서는 ‘key person’(중심인물)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친구로 지칭하는데, 친구는 감정적으로 따스한 유대감을 가진 사람으로 서로 위로가 되고 자극도 받아 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유대감을 갖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데 시간을 들이고 부를 때 반응해야 하며 꼬였을 때 푸는 애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친구를 아름답게 노래한 글들을 보면 대부분 오래되고, 멀리 있는, 승화된 기억들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친구는 어떤가. 일상의 무료함이나 외로움을 나누는 사람과, 무엇이든 함께 하던 노래 속의 ‘이상적 친구’ 사이 어딘가에 있을 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기본 불안증과 특별한 문제 성향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필요로 한다. 대화가 되는 사람, 통하는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으면 좋을까.
이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범죄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눈동자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거기에 자신의 세계가 넓고 깊어져 생각할 과제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여러 분야의 대화를 나눌 다양한 친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많은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신앙이나 가족 이야기, 인간관계, 사회적인 문제들, 자유를 향한 고민 등등으로 나뉘지 않을까. 이런 친구에는 나이가 관계없고 정서적 취향과 대화 방식, 친절함이 조건이 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친구
몇 가지 질문을 해보자.
우정은 사랑보다 순수하며 변하지 않는가. 친구가 나를 부르면 나는 언제고 달려갈 수 있는가. 가까웠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가.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생각이 바뀌며, 나이 들며 서로 위로하기 쉽지 않은 상태가 온다. 심지어는 단 한 번의 실망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친구의 사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필레오’도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가 아니므로 다분히 조건적인 의미의 애정으로 표현된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아들러는 친구는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되어,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노력할 때 최선이 된다고 하며 그 가운데 자신의 이상적인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이와 다른 면에서 프랑스 정신과 의사 스테판 클레르제는 친구 사이에 ‘받아주는 사람’과 ‘쏟아내는 사람’이 설정되기가 쉽다고 말하며,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친구가 어떤 피해를 말하면 늘 듣고 힘을 주려 애쓰다가 자신이 소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는 가까울 때뿐 아니라 멀어지면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어 거리 두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사람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기
존 비비어는 저서 <관계>에서 ‘실족’을 덫에 걸리는 것에 비유한다. 사람에게 당하고 나서 그 일에 매달리다가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고, 점점 자신이 황폐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면서 실족하게 만드는 사람은 ‘원수가 아닌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가까운 친우’라고.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라는 다윗의 시편 55편을 인용한다.
그렇다.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신 걸 보면 실족도 삶 가운데 통과해야 할 단계임이 틀림없다.
종종 실족한 사람들이 자존심으로 무장하고 ‘괜찮다’고 하지만 안으로는 비탄의 열매를 맺으며 순수했던 마음에 불순물을 넣어 감각이 무뎌지는 것도 모른다고 짚는다. 또 상처를 더 받게 될까 봐 마음의 벽을 쌓으며 방어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내성적으로 움츠러드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먼지를 털어버려라!
그렇다면 관계에 있어 지혜로운 태도는 무엇일까. 부당하게 취급을 당했다고 여겨질 때 예수님은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거기에 매이지 말고 다음 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시는 귀한 제안이다. 시원한 이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습성 때문일 수 있다.
덫으로 들어가는 습성! 자신의 희생이나 고생이 삶의 주제 혹은 삶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사람이 걸리기 쉬운 습성이다. 존 비비어는 그 점도 ‘선택’이라고 하며, 그 힘으로 남을 누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라고 말한다. 이런 면을 직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성장으로 발돋움하려는 사람만이 용기를 내 인정할 수 있는 면이다. 그러면서 회복이 일어나고 조금씩 관대해지는 가운데 ‘나’라는 자의식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중국 전국시대 묵자가 ‘논쟁은 지면 기분 나쁘고, 이겨도 별 의미 없이 사람을 잃게 된다’고 한 걸 보면 어리석은 변론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사람도 잃게 됨을 깨닫게 된다. 살아가며 실족하는 많은 부분이 말에서 오므로 가까운 사이에는 꼭 생각해볼 부분이다.

안타까운 ‘델마와 루이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20대 두 여인의 이야기다. 가부장적인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한 델마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는 일상의 답답함을 안고 주말여행을 떠난다. 시작부터 자유분방함이 터진 델마에게 치근대는 남자가 붙고 사건이 커지며 두 여인은 도피 생활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들의 연약한 부분이 계속 문제를 만들어내며 상황은 코너로 몰리게 된다. 친구끼리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지 무력함이 전해져 오며,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서도 크게 웃고 있는 델마를 향해 ‘넌 지금 재미있는 게 아니야’라고 하는 친구의 말이 영화 전체를 대변한다. 영화 전문가들은 멋진 로드무비라고, 페미니즘의 일격이라고, 통쾌한 라스트 씬이라고 말하지만, ‘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서로에게 인간적인 의리를 나눈 것 외에 둘의 우정은 웃고 있으나 비극적인 여행으로 마친 운 없는 인생 이야기일 뿐이다.
친구란 무엇일까. 위로와 성장, 좋은 자극이 되는 친구를 그려본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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