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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246호] 2020년 09월 01일 (화) 장다운 @
   

<귀 기울이면 들리는 새 관찰 사전>
나탈리 토르주만 글 쥐디트 게피에 & 쥘리앵 노르우드 그림 타임주니어, 2019년

<내가 새를 만나는 법>
방윤희 글·그림 자연과생태, 2019년


장인어른은 새로 나온 물건을 좋아하셨다. 비디오카메라, 전축,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전자사전, 노트북, 휴대폰 등 시대를 대변하는 기술집약적인 상품들이 나올 때마다 재빠르게 구입하셨다. 이외에도 자동차용 휴대 냉장고와 접이식 자전거와 같은 레저용품 등 딱히 분야를 가리지 않으셨다. 이렇게 구입한 물건들을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고 지켜보면 딱히 쓰임새가 분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매뉴얼을 보면서 만지작거리시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주셨고, 한두 번이나 사용했을까 싶은 신상의 면모 그대로였다.
나라면 평생 사지 않았을 물건들을 선물 받은 덕분에 한번은 아버님이 물려주신 자전거가 희귀한 초기 모델이라며 잡지에 소개된 적도 있다.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 집에는 여전히 아버님의 물건들이 많다. 얼마 전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쌍안경을 크기별로 세 개나 발견했다. 아, 쌍안경으로 새를 관찰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풀숲이나 덤불 혹은 처마 밑에서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는 게 흔한 일일 만큼 미술관에는 온갖 새들이 모여든다. 갑자기 날아든 새가 어떤 종류인지 아이들이 물어볼 때마다 민망했는데 이참에 잘 되었다 싶었다.

문제는 그 새들을 쌍안경으로 열심히 관찰한들 뭘 봐야 하는지…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 책을 찾아보았다. 도감은 보통 그림 혹은 사진으로 된 것 두 가지 종류인데 그림의 경우가 새의 모습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해 준다. 카메라는 차별 없이 새의 모습을 그대로 찍어내지만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각각의 새가 가진 도드라진 특성을 보다 강조하여 그려낼 수 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책 두 권. <귀 기울이면 들리는 새 관찰 사전>은 새에 대한 내용을 망라하는데, 이 한 권만 읽고도 조류학자가 된 듯한 기쁨을 안겨 준다. 울음소리만으로도 새를 구분해 내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QR 코드를 이용한 새소리 카드는 이 책의 백미!

또한 <내가 새를 만나는 법>은 새를 좋아하는 마음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초등학생 그림책 같은 분위기는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에 제격이고, 새를 보면서 귀를 열게 되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에까지 시야가 넓혀졌다는 저자의 경험은 예민한 예술 체험과 다르지 않다.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셨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시는 아버지여서 딸은 아버지 살아생전 함께 보낸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데. 아버지는 지구본을 사고, 휴대용 자동차 냉장고를 사고, 접이식 자전거를 사고, 쌍안경을 사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기약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를 관찰하는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하려고 전망 좋은 창가 테이블에 쌍안경과 도감 몇 권을 함께 올려놓았다. 아버님이 쌍안경으로 보고 싶으셨던 풍경이 이런 모습이었을지.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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