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축산과 도축으로 신음하는 동물들을 생각하며

혹시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봤는지? 자신이 키우던 슈퍼돼지 ‘옥자’가 도살될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 미자는 옥자를 구출해 내려고 도축 공장에 직접 잠입한다. 그곳에서 주인공 미자를 따라 공장에 함께 들어간 관객이 보게 된 도살현장의 실체는 우리가 맛있게 먹는 고기의 잔혹한 이면이다. 하나의 생명이지만 그들은 도살 과정에서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가 생명 없는 재료처럼 압축되어 소시지가 된다. 누군가는 그 장면에서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기도 했다. 공장식 축산과 도축의 실체를 마주하며 진지하게 채식을 생각한 이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앞에서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거나. 이 두 가지 외에 선택지는 없는 것일까?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흔히 채식은 생태계를 지키는 최선의 실천이자 공장식 도축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고기를 넘어 우유, 달걀 같은 동물성 음식까지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vegan)’이 되기는 어렵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소 고기를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한다. 현실적으로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어려운 보통의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진지한 실천이 쉽지 않아 지레 포기하기도 하고.

인문서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하나의 대안으로 소개되어 유명해진 ‘미치광이 농부’ 조엘 샐러틴은 호르몬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방목으로 농장을 운영한다. 샐러틴은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그의 저서 <돼지다운 돼지>에서, 성경에 충실한 관점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게 아니라 돼지를 돼지답게 키운 후 공장식 도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도살해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생명에는 죽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정직한 상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해 의존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샐러틴은 더 나아가 이렇게 주장한다.
“때때로 동물보호 운동가들과 완전채식주의자들은 본인들이 동물을 먹지 않으니 덜 폭력적인 삶을 산다며 자기 의를 내세운다. 그러나 생명의 영속성이라는 동물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여 인위적으로 동물들의 목숨을 유지시키는 행위는 생태계에 더 큰 폭력 아닐까!”
20년을 비건으로 살았던 리어 키스는 <채식의 배신>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채식을 비판한다. 키스는 20년간 비건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거식증 같은 식이 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하며, 극단적 채식이 특정 나이대나 체질의 개인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유아나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동물성 지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 대부분의 채식주의자가 유기농 채식 식단을 짜느라 해외에서 공수해온 곡물을 먹는데 환경을 생각한다는 그들이 이 때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에는 눈 감고 있다는 점, 곡물을 대량으로 재배할 농토를 만들고자 열대우림을 포함한 엄청난 양의 숲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 등이 키스가 지적한 채식주의자의 딜레마다.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
반면 <죽음의 밥상>을 쓴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샐러틴과 같이 동물을 스트레스 없이 키우는 일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며 이들을 “양심적 잡식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결국 동물을 동물답게 키우고 나서 그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동물이란 우리가 이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혀줄 뿐”이며 결국 “행복하게 살다 간 돼지를 고기로 만든 햄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공장식 농장에서 나온 햄과 겉보기에 차이가 없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이런 싱어의 생명존중 기준에 대한 비판 또한 있다. 식물이나 동물이 고통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싱어의 생명존중 기준인데 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 발상이라는 것.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인간이 탐욕적으로 고기를 섭취하고자 공장식 축산과 도축 과정을 운영하는 현실을 직시하되, 동물과 인간이 상생하는 방법을 입체적으로 고민한 후, 채식을 혹은 고기를 줄여나가는 것을, 자연농법을 실행하는 로컬농장을 알아보는 등 다채로운 실천을 이루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채식 아니면 육식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각자의 자리에 맞는 생태적 실천을 이루는 ‘고민’을 하는 것, 그게 핵심 아닐까.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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