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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철든 어른, ‘때를 아는 사람’
위로자로 살아가려면…
[245호] 2020년 07월 01일 (수) 전영혜 @

지금, 우리의 때
가까운 나라인 일본, 중국, 미국과 북한이 우리에게 이렇게 경각심을 주는 때가 있었던가. 친구도 적도 아닌 이웃 나라들 대하기가 무척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 거기에 ‘살인 바이러스가 비규칙적 폭풍으로 몰아쳐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세계적 바이러스 전문가인 네이선 울프의 말이 실제가 된 지금,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구석진 곳들의 실상이 드러나며 열악한 문제가 터지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 속 눌렸던 분노가 터지며 사람들의 마음에 회의가 일고 있다. 인간에게 소망이 있는가. 흑인들은 지나간 노랫말을 다시 읊어댄다. “얼마나 많은 강을 건너야 책임자와 말할 수 있나.” 부르짖는 말은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는 계속되니 자신들을 드러내는 수단은 폭동뿐이라고.
이 와중에도 질병과 싸우는 이들, 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이들…. 모두 귀한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절이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른’으로서 이런 주변 상황과 때에 민감하지 않고 닫힌 성격을 보인다면 그것은 미성숙의 표가 된다. 직접 피부에 닿지 않으면 생각이나 느낌이 없는 단계는 아동들에게 정상적이지만 성인이 그렇다면 이유를 찾아야 한다.
니나 브라운은 그의 저서 <철없는 부모>에서 과도한 자기애를 가진 자기중심적인 어른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에 관한 것이 늘 대화의 초점이 되는 사람. 자신이 이룬 것에 취해 말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관심을 기대하다가 기분이 쉽게 상하는 사람.’ ‘그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당혹스러움이나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 외모, 성취 등의 욕구에 차 있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여지가 없고, 거리감이 있는 상황에는 무감각하게, 부닥치는 일엔 더 까다롭게 대한다.
나이가 들면서 젊은 날 배타적이었던 뜨거운 사랑이 너그러운 사랑으로 주변에 위로로 퍼져가야 하는데, 이런 사람은 어떤 면에서 정지된 것일까.

시간 속에 ‘깨닫는 경험들’이 있어야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는 인생을 ‘태어나면서부터 앞으로만 가는 일방통행’이라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게 됐을 때는 손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셰익스피어가 ‘폭식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시간은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빠르게 지나감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특별한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며, 그 깨달음으로 주어진 때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고난, 고민, 기쁨, 좌절을 맛본 나이 든 사람들의 표정 없는 그늘에 다가가 대화를 해보면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독특한 울림’을 들으며 새로운 삶을 배울 수 있다. 이어 그 말을 듣다 보면 ‘공감’하는 것이 공의를 외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모르는 사이 서로의 위로자가 된다. 이 위로의 힘, 깨달음은 어디서 올까. 필립 얀시는 여기에 ‘은혜’라는 단어를 쓴다. 삶, 성공에 매여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빛으로 임하는 특별한 훈훈함, 감사가 ‘위로’의 바탕 에너지인 것이다.

때에 맞는 성숙함을 방해하는 것은
주변에서 보듯이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지혜로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노를 다룰 줄은 알아야 한다고 심리학자 류 쉬안은 말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매일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자신의 겉모습뿐 아니라 감정까지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감정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욕구에 매여 ‘가장된 분노’로 남들을 조종하거나 피해자인 척 우회적 방식을 쓰게 된다. 이러한 분노는 부정적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들어 언제든 어디서 부채질만 하면 폭발하게 되어 자신을 더 원초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발산으로 해소한다는 것은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 버릇을 만들어 주변 사람을 황폐해가게 하고 내재화된 감정 이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미성숙함에 계속 머무르게 할 뿐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알겠다고 말을 하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 그러다 곤란한 상황이 되면 지나가는 말이었다고 하는 사람, 친절과 냉담을 오가는 사람이다.
왜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다. 아이의 불편한 칭얼거림을 살펴주지 않는 엄마 밑에서 자라며 욕구의 해소 방식을 나름대로 찾아온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할 일을 미루고, 늘 별문제 없다고 여기며 필요한 때에도 자기표현에 두려움을 갖는 사람으로 심리학에서 수동 공격적인 사람이라 분류한다.
한편 부족함을 모르고 좌절을 경험할 새 없이 자란 사람들의 얕음을 간과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살펴볼 마음속 긍휼함이 자라기 힘든 토양, 위로하며 팔을 뻗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내려놓는 자세가 안 되고 이기적인 모습을 지닌 이런 이들이 간혹 리더의 자리에 설 때 대중들은 혼란을 겪으며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게 되는 경우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심리학에 나오는 ‘good enough’라는 말대로 우리 성장의 토양은 ‘그 정도면 충분한’ 삶이 최선일지 모른다.

위로자로 변하고 싶은가
변화를 원한다면 새로운 일, 안 해 본 일을 시도하라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난 원래 이래’라며 머무르지 말고 가슴을 넓혀 상냥한 인사말을 건네 보며, 뒷사람을 배려해 문을 잡아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을 비춰보는 ‘탐조등’을 켜라고 한다.
또 급변하는 세상 상황에 당황하며 끌려갈 것이 아니라 먼저 새로운 삶을 모색해 시도해본다. 그 한 예로 집안 공간에 재택근무를 위한 일하는 공간을 잘 만드는 구상도 해보고, 혼자 잘 지내는 삶의 방식도 연구하는 거다.
분노 조절을 위해서는 복식 호흡이나 주먹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것, 자신과의 대화를 가지며 ‘괜찮아, 됐어’ 등의 말로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한다.
또 남이 주인공이 된 자리에 기꺼이 동참하기, 내 말이 길어질 때 신호해달라고 가까운 사람에게 부탁하기,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 갖기 등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경계에는 큰 숲을 만들어 사막의 확대를 막는 사업이 2007년에 시작돼 지금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식물학자 리처드 베이커가 제안한 지 50년이 지난 뒤에야 공감을 일으켰다. 4만km 길이에 50km 폭의 숲, 사막에 아득한 얘기로 들렸던 그 일이 여러 과정을 거치며 착수된 후, 현재 20% 이상 진전을 보이며 2030년 완성을 향하고 있다.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되지 않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이렇게 아주 작은 것부터 매우 큰 프로젝트까지 가능하다. 가슴을 넓게 펴고 우리에게 오는 깨달음의 은혜를 촉촉하게 받아들이면 말이다.

<유머에 관한 조언>
◆ 남을 놀리는 유머는 그의 장점을 집어서 하도록 한다.
◆ 자신을 낮춰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다.
◆ 다른 사람의 유머를 알아듣고 넘기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빈정거림이나 차별해 짓궂게 말하는 ‘해로운 유머’에는 동참하지 않아야 한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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