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때, 구약학자 하경택 교수에게 듣는 쉼의 의미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근대 인간이 합리적인 지성으로 자연을 ‘탈마술화 시켰다’고 본다. 과거 인간에게 자연이 신비롭고 마술적인 것이었다면 근대에 인간은 그 현상을 규명하고, 예측하며, 통제 가능한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과학기술의 혁명을 거듭하며 인류는 21세기를 맞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시대가 열렸다. 열심히 일하려고 모일수록 강력하게 전파되며 생명을 빼앗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일들을 멈춰 세웠다. 이 ‘때’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멈춤의 때’를 맞아 ‘쉼’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하경택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를 만나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안식’, ‘쉼’의 개념은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 이 때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쉼을 보장하라
“성경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떻게 균형적으로 적용할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은 성인 남자 자유인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법은 그들에게 약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가 없는 자들’에게 쉼을 보장해 주라는 계명인 것입니다. 이 계명은 출애굽기에 처음 등장(출애굽기 20장 1~17절)하지만 신명기(신명기 5장 6~21절)에 가면 더 구체적으로 발전합니다. 자유인은 자신이 거느린 가축과 종들을 안식일에 반드시 쉬게 하라며 ‘소’, ‘나귀’와 같이 인간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축을 언급합니다. 또한 남종과 여종에게 안식을 주라는 내용을 두 번 반복함으로써 안식일 법을 강화합니다.”
안식은 ‘내가 쉬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용하고 있는 것들을 ‘쉬게 하는 것’으로 주인-종, 사람-가축 간 위계질서와 노동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을 멈추게 한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대리자로 세웁니다. 창조 세계를 다스릴 권한을 준 뒤, 하나님 자신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인간을 세우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의 명령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창조주로서, 자신의 일인 통치를 인간에게 양보한 것이지요.”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성경은 그러한 인간이 ‘타락’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 타락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이 책임적인 존재로 살기를 바란 것이지요. 배신과 타락의 결과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고, 나아가 피조 세계가 혼탁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문제의 근원이자 희망의 디딤돌입니다.”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말이다. 창조주가 창조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인간에게 준 것이 자기절제와 양보인 것처럼, 그의 형상인 인간 역시 절제와 양보를 밑바탕에 두고 ‘섬김’의 통치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다스리는 대상을 쉬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경영하던 일을 ‘멈춤’으로 가능하다. 남녀종과 가축에게 부과된 노동을 멈춤으로 쉼이 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숨 돌릴 틈이 필요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안식과 쉼의 의미로 한걸음 더 나아가 본다.

“출애굽기 23장 12절을 보면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할 이유를 ‘숨 돌림’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쉼의 본질은 창조주에게로 소급되는데 출애굽기 31장 8절을 보면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다’고 쉼의 당위를 제시합니다.”

창조주가 숨을 돌렸기에, 인간도 숨을 돌릴 틈이 필요하다는 것. 숨 가쁘게 사느라 삶에 독소가 쌓이는 줄도 모르고 지내는 우리들에게 ‘숨 돌림’이 안식의 의미일 터. 나아가 신이 인간에게 숨 돌릴 틈을 준 것처럼, 인간도 타인에게, 그리고 자연 세계에 숨 돌릴 틈을 주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코로나19는 숨이 차도록 살아온 인간이 초래하게 된 결과다. 우리도 쉬어야 하고, 자연도 쉬어야 하는데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자연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원을 사용하는 동안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반대로 우리가 멈춰 있는 동안, 자원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 다시 숨이 쉬어지고, 독소들이 제거되고 있다. 하여 코로나19는 인간에게 위험임과 동시에, 멈추어 쉬라는 구약의 가르침에 다시 귀 기울이게 한다.
끝으로 우리의 멈춤에 대해 묻는다. 아무런 비판적 성찰 없이 4차 산업혁명, 5G시대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때에 귀 기울어야 할 말이다.

“편리함만 생각하면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 몸은 쉬고 있어도 신경은 계속 살아서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신적, 영적 쉼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의미의 쉼은 노동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을 포함해 일상의 관계, 수많은 연결되어 있는 것들로부터 분리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멈춰 서서 숨을 돌리는 가운데 성찰이 생기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멈출 때, 숨을 돌릴 때, 오히려 세상은 살아가고, 나아간다.

민대홍
본지 객원기자. 서로교회 담임목사로 파주 출판단지에서 문서 사역과 목회를 하고 있으며, 숭실대학교에서 ‘한국기독교 역사관’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