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과 시청 광장>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끼고 본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찾아서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코로나 여파로 삶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사람들 간의 접촉 거리는 멀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 만남도 줄어들었다. 자주 보던 지인들도 SNS를 통해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신하곤 한다. 실제로 말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른 말로 수다가 그리운 것이다.

특별히 갈 곳 없고 마음이 헛헛할 때 가끔씩 찾는 곳이 있다. 광화문 광장, 시청 광장 일대다. 광장 뿐 아니라 북촌, 서촌, 경희궁길, 삼청동, 인사동, 세종문화회관, 성공회대성당,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길, 대형서점, 청계천로 등이 걷기 좋아하는 뚜벅이에게는 알찬 코스다. 그중 탁 트인 광장은 복잡한 도심에서 마음 한 조각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광화문 광장, 시청 광장은 근대 역사 속에서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곳이다. 민주주의 운동의 정점을 이룬 처절한 현장이었고, 저마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2월드컵 때, 온 국민의 응원과 축제의 중심지로 세계의 이목을 끌던 기억이 선명하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주말이면 늘 시위하는 수많은 군중의 저마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20년 넘게 시위촬영을 통해 광장에서 본 한국의 민주주의의 수준은 어려운 시대를 지나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그러나 발언권이 더욱 자유로워진 만큼 일부 시민들의 시위 수준은 내용과 목소리에 오히려 광기만 더 커진 게 아닌가 하여 피로를 느끼곤 한다.
기탄없는 수많은 말, 말, 말에 피로사회가 되고 있지 않은지.
공자의 말이다. “군자가 중용을 행함은 군자답게 때에 맞추어 중(中)을 실현한다. 그러나 소인이 중(中)을 행함은 소인답게 기탄(忌憚)함이 없다.”
기탄(忌憚)은 ‘거리낌 있는, 신중한’이라는 뜻이다. 흔히들 계급이나 지위를 내려놓고 기탄없이 이야기하라고 한다. ‘격식 없고, 쿨한, 뒷 끝없는’이라는 뜻으로 그 말을 써왔다. 그러나 기탄은 소심하고 용기 없는 상태가 아닌 지혜롭게 상황과 때를 살피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입을 단속하는 것이 신중한 일이 되고 있다. 몸은 예전처럼 빨리 반응을 못해 실수가 많은데 말은 많아지고 가르치려 하고 절제가 힘들다.

코로나 상황에서 주말에 와본 광화문, 시청광장의 초록잔디는 인적이 어색한 듯 푸르고 푸르다. 시위대 없는 평화로운 광장에 드믄 드문 행복한 풍경이 더욱 눈에 띈다. 아이와 뛰노는 가족들, 자리 깔고 커피 한 잔에 노트북 보는 청년. 사진을 찍으며 쉴 새 없이 웃어대는 여고생들. 마스크는 썼지만 행복한 눈빛들이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면 눈빛으로 면박 당하고 여러 제약들이 생긴다. 더운 여름, 마스크 하나 더 써야겠다. 외부에서 오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내 안에서 나오는 기탄없이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의 바이러스가 더 무섭고 파괴적이다.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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