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시간들은 현재의 우리를 얼마나 좌우하는 것일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유년시절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기꺼이 우리는 함께 그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곤 한다.
엄격했던 부모님의 얼굴, 사랑받지 못한 11살 생일의 우울,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아버지의 환한 웃음이 남동생에게 향하고 있던 그 날, 친구들에게 끌려가 폭력을 당하던 공포,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나 어머니 그 누구도 아닌 할머니 집으로 걸어 들어가던 날의 눈물.
그 날들을 기억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 뿐 아니라 감각까지 이입되어 온 몸이 얼어붙곤 한다. 그것들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쫓아와 영원한 올가미처럼 발목을 붙잡는다.

상담을 배우고 익히던 시절, 나 또한 과거와 오래 씨름했다.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 밀어내고, 덮어두었지만 끝내 세포에 새겨져 남아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끄집어내어 들어주고, 해결하지 못하고 묻어둔 문제들을 직면하는 시간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렸다. 그 시간을 통해 과거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졌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의 나를 만나 들어주고, 이해하고, 함께 머물러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아프게 한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았고, 그 기억이 건드리는 감정 또한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 우리를 아프게 한 시간들을 살피고 기억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지난 시간에 대한 치유는 대체 어떻게 일어난다는 것일까.
70년에 걸친 인간의 전 생애를 연구한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조지 베일런트는 ‘과거 속에는 고통의 기억도 묻혀있지만, 사랑의 기억들 또한 함께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기억이 주는 ‘저주’이자 ‘축복’이라 표현한다.
아픔을 안고 상담실 문을 두드린 내담자들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스치는 순간들이 바로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순간들이다.
고통의 시간을 한 겹 들추자, 그 이면에 놓여있던 사랑의 기억들, 끝내 그를 일으킨 누군가의 따뜻한 손, 누군가의 한 마디, 일생의 고비를 건널 때 곁에 서 있던 사람들, 힘든 기억과 함께 저편에서 번지는 따스함을 기억해내면 내담자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아갈 이유가 있었음을 되살려낸다.
인간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억이 쌓아올려 세운 집이 바로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끝내 묻으려 하고, 지우려 해도 시간의 강을 건너 지금에게로 찾아온 ‘기억’들은 우리가 삶에 품어야만 하는 이유를 수수께끼처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바로 기억 속에서 잃어버렸던 ‘사랑’을 찾는 일이다. 과거는 현재를 붙들어 매고,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끝내 살아남아, ‘현재’를, ‘지금의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또 다른 힘이다.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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