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통해 생명 의미 되짚어보기

1816년 여름, 제네바 근처 한 저택에 다섯 명의 남녀가 모여 있다. 휴가를 즐기기 위해 모였지만, 춥고 비가 많이 내린 날씨 탓에 저녁마다 불타는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낼 뿐이다. 어쩌다 손안에 들어온 독일 유령 이야기들을 나눠 읽으며 있던 중 누군가 제안을 한다. “우리도 이렇게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이야기를 한 편씩 써 볼까?” 그들이 즐기던 이야기들을 모방하고 싶다는 장난기 섞인 욕망을 실현시켜 보기로 한 거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갑자기 날씨가 온화해진다. 함께 이야기를 써보자고 결의한 다섯 친구 중 두 명은 알프스 산맥으로 여행을 떠나버리고,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풍광 속에 그 둘은 소름끼치는 상상의 기억은 까맣게 잊고 만다. 오직 한 명, 메리 셸리만이 이 약속을 지켰고, 그 약속은 지금 <프랑켄슈타인>이란 책으로 우리에게 남겨졌다.

프랑켄슈타인인가, 괴물인가
원래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the Creature)을 만든 인간 창조자의 이름이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과학자가 생명의 원리를 고찰하기 위해 시체들을 연구하다가 “개체 발생과 생명의 원인”을 찾아내 괴물을 창조해낸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나중에 북극에서 우연히 만난 로버트 월턴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생명의 원인을 찾아낸 당시를 회고하며 “나로부터 배우도록 하라.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라고 말할 정도로 창조행위를 후회하고 이후 심한 내적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피조물 입장에서도 삶이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피조물은, 자신을 창조했지만 그 무시무시한 형상을 견디지 못하고 유기한 채 도망가 버린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을 찾아내 이렇게 호소한다.
“내 창조자인 당신이 나를 혐오하고 내치다니. 나는 네 피조물이고,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지 않는 한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얽혀 있다.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그렇게 만난 둘은 기나긴 대화를 나누는데 이 내용은 그 자체로 ‘인간이란 누구인가’를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명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의 대화를 듣다 보면, 피조물을 향해 “사악한 악마”, “혐오스러운 괴물”이라고 칭하며 도망가기에 급급한 프랑켄슈타인보다 자신이 어떻게 언어와 철학적 사고를 가지게 됐는지 설명하며 “나를 위해 여자를 만들어 달라. 내 존재에 필요한 공감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이라며 인간을 설득하는 피조물의 감정과 논리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유전자 편집의 시대, 인간됨은 무엇인가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돌연변이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도록 교정하는 생명공학 기법을 ‘유전자 가위’라고 부른다. 유전성 질병인 혈우병 같은 경우 돌연변이 유전자를 편집해 병이 유전되지 않도록 하는 식이다.
이런 유전자 편집이란 결국 인간의 설계도를 원하는 대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병 유전자의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키, 눈 색깔 등의 외관, 심지어 지적 능력 등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것을 탄생 전에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다가온다는 것.
프랑켄슈타인은 시체안치소, 해부실, 도살장에서 창조의 재료를 수집했다. 그렇게 수집한 재료로 “사지는 비율을 맞추어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해 창조했건만, 결과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결국 시체의 이곳저곳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피조물은 ‘나는 누구인가’란 지난한 질문에 빠지고, 괴물도 인간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방황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창조자 프랑켄슈타인 또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삶이 망가지고.

유전자 가위로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어내는 오늘, 프랑켄슈타인과 그 피조물을 통해,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인간성의 보루는 무엇일지, 프랑켄슈타인의 고백처럼 지식의 획득이 항상 유익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여름을 보내면 어떨까.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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