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야기를 붙잡다

6.25 참전 프랑스 용사의 이야기 ❶
프랑스 노르망디에 사는 폴 로랑 씨는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나 되어 이제는 기억해주는 이가 별로 없는데, 마스크 선물을 받고 매우 기뻤어요. 한국인들은 그 전쟁에서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을 늘 귀히 여기는 마음임을 잘 압니다”라고 프랑스 일간지에 인터뷰했다. 또 미셸 오즈왈드 씨는 한국전 참전 용사라 적힌 모자를 쓰고 공영방송에 나와 자신이 고아로서 힘들던 18세에 자원입대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그곳은 죽는 전쟁터’라고 다들 말렸지만 정작 한국에서 사람의 따스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힘
살면서 일어나는 사건에 원인과 결과를 넣어 새롭게 빚어내는 이야기는, 감정의 포장에 잘 쌓여 전달될 때 ‘공감’이라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이야기는 연대기 사건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속에 자신을 실현하려 선택한 욕구가 담겨 있어 생동감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진정성으로 접하는 이에게 느낌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해 요즘 사회에서 점점 더 소중하게 대두된다.
어떤 이야기는 줄거리 중 ‘말 한마디’에서 스스로 치유를 경험하게도 하는데, 영화 <굿 윌 헌팅>의 선생님이 가정폭력 속에서 자라난 주인공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주인공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 주는 문장에 뭉클해 하는 경우다. 언젠가 그 말이 내게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음이 기억나면서 이제 그런 말을 따라 해보게 된다. 자신에게, 또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골라낼까
이야기의 소재, 주제는 곧 ‘문제’로 느껴지는 것을 잡는 것이다. 긴장감 없이 스치는 사건들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이 던져지는 일들을 끌어내는 거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특성적 씨앗을 지니고 있어, 그 특성은 서로 다른 시기에 밖으로 드러난다”는 작가 톨스토이 말대로 자신이 살면서 혼란했던 시절의 경험들을 짚어가는 것이다. 자존감 낮음, 두려움, 불성실, 중독 등으로 애쓴 기억을 문화적 맥락과 상황으로 넓게 보며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생긴 안타까운 환경으로 풀어본다. 그리고 문제를 사람에게 분리해내어 제목을 붙인다. ‘이상한 분노, 억지 자백, 실망의 조수, 잘못된 매질’…. 그러면서 부모 중 한 편이 한 아이를 편애할 때 다른 한 쪽이 그것을 완충하려 또 다른 편애를 보이는 경우도 알게 된다. 이렇게 문제가 표출되면 그 기억의 상처는 점점 작아지며 자존감 등의 문제가 나아진다는 것이 이야기 치료의 핵심이다.
이때 생각은 복잡하게 하지만 표현은 단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는 말로 할 수도 있고 글로 쓸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덜 중요한 사건들은 빼고 지배적인 이야기 줄거리를 이어가는 구성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작은 주제들로 나누는 것이 요긴하다.

유럽에서 ‘미스터 션샤인’을 이야기하는 젊은이들 ❷
유럽의 한복판 룩셈부르크에 직업을 따라 각국에서 와 있는 젊은이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갇혀 ‘재미있는 것’을 소개해달라며 서로 물었다. 한국계 친구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며 ‘미스터 션샤인’을 추천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부터 이 젊은이들은 한국 역사드라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제일 먼저 따라잡은 이집트인 아미나가 “어제 새벽 한 시까지 봤다”하고 미국인 사샤는 “난 눈물 흘리며 보게 되더라”고 했다. 브라이언 역시 “난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이것은 가슴 찡하게 보고 있다”며 슬픈 한국 역사 속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있었음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국 역사드라마가 이 다국적 젊은이들을 끈 힘은 무엇일까.

매력 있는 이야기
이야기는 우리를 상상하게 한다. 그 상황과 그 속의 주인공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면서 우린 다짐도 한다. 힘들어도 정의로운 쪽을 택하겠어. 불이익이 와도 감수할 거야.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기도 하고 바로 세우게도 한다. 그런 면에서 매력 있는 이야기는 ‘가치 있는’ 이야기다.
필립 얀시가 큰 슬픔의 사건이 발생한 곳곳을 찾아 그 사고를 겪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만난 이야기가 여러 나라 베스트셀러로 읽히는 것을 본다. 그는 큰 고난 가운데에도 은혜가 있는지,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보기 위해 달려가서, 뉴스로 전달되는 것 외에 조용한 깨달음과 변화를 관찰해 이야기로 풀어간다. 그런 고통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는 우리 모두의 궁금증이 아닌가.

이야기적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요즘 ‘이야기’가 얼마나 유용한지 ‘스토리노믹스’라는 새로운 용어로 경제와 광고에도 이야기를 넣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고 무엇보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가.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면 우선 자신과 가족에 대한 ‘앎’이 깊어지고 살아온 상황을 포괄적으로 조명하게 된다.
그러면서 삶에 지지자가 되어준 고마운 분들을 기억해내며 다시 힘을 받는다. 한편 슬픔과 괴로움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는데, 그것은 밑에 가라앉은 진흙을 일으켜 흘려 내보내는 작업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는 ‘글’로 쓸 때 방해를 받지 않고 한 사건씩 정리해갈 수 있어 더 명확해지면서 그것이 삶에 끼친 영향을 알게 된다. 주의 깊게 생각해보면 어떤 일들의 영향이 금방은 안 좋은 듯 나타나지만 한편 인생 전반에는 귀하게 영향을 준 것도 보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가 흑인으로 체중이 1백 킬로그램이 넘는 여성으로 살며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던 수치스럽고 처절했던 이야기를, tv 프로그램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안다. 그녀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성폭력으로 아픈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오픈하며 최고의 공감을 일으켜 그야말로 ‘상처 입은 치유자’의 아이콘이 되었다. 대중의 위로자, 거울, 삶의 모델이 되는 데에는 이런 진실과 용기만 한 게 없다.
여기에 이야기적 사고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빈약한 결론으로 가지 않도록 삶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이야기대로 살아가게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모습, 가능성으로 변화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야기(삶)의 주제가 풍부해지도록 자신을 더 이해해가며 역사와 문화를 익혀가야 한다.

새로운 나의 이야기
이야기에 절대적 선한 인물이나 상황을 미화하는 것은 일종의 우상화로 진실이 아닐뿐더러 감격을 반감시킨다. 단지 사람이나 때와 장소, 사건이 쓰임을 받은 것으로 엮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인정하고 교정도 해 주며 기억의 차이를 발견해가는 가운데 그 이야기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한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지배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찾아 문제를 해체하고 분석한 후에 새로운 이야기 (삶)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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