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야기를 붙잡다

코로나19 이후로, 극장이 거의 개점 휴업 상태인데다가, 개개인의 외부 활동에도 제약이 많다 보니,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Netflix) 사용자가 상당히 늘어났지요. 넷플릭스 최근 콘텐츠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화제인 것은, 이름 그 자체가 ‘농구’와 동격인, 바로 마이클 조던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미공개 영상을 포함한 8시간 20분짜리 초장편 다큐멘터리로, 총 10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 라스트 댄스>는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미국프로농구(NBA) 6번째 우승을 하던 1997~98년 시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현재와 과거, 조던 개인과 그 주변 동료들의 삶을 오가며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 버락 오바마와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의 인터뷰도 삽입되어 있어요.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을 다뤘음에도,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탁월한 편집 구조로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을 보여주는 멋진 다큐입니다.

20세기 미국엔 두 명의 MJ가 있습니다. 바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입니다. 한 명은 문화 쪽에서, 또 다른 한 명은 스포츠 쪽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상품이자 아이콘이죠. 이중 조던은 미국 프로스포츠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만든 일등 공신입니다. 조던으로 인해 미국 스포츠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더불어 군소 브랜드 중 하나였던 ‘나이키’가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지요.

초장편인 만큼 <더 라스트 댄스>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중 극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이슈는 “현재를 선택할 것인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하는 딜레마입니다. 1997년 5번째 우승컵을 쥔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1998년을 맞이하면서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시카고 불스 구단은 당시까지 이룬 5번의 우승 성과에 만족하고 새로운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동안 불스 신화를 이끌었던 값비싸고 노쇠한 선수들을 내보내고, 값싸고 젊은 선수들로 새롭게 정비하고자 해요. 조던과 함께 한 주요 동료들 뿐 아니라, 감독과도 더 이상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합니다. 1998년 성적을 미리부터 포기하는 액션을 취한 거예요. 여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성적이 낮아야 좋은 신인을 선발할 수 있는 우선권을 쥘 수 있기에, 당분간 좋은 성적 거두는 것 자체를 막으려고 한 겁니다. 과거에 마이클 조던이라는 신인 하나를 선택해 최고의 팀에 올랐던 경험을 재연하려는 걸로, 눈앞의 1-2년 농사를 접고, 이후 10년을 넉넉하게 벌겠다는 거지요.
하지만 조던은 이런 구단의 계획에 노골적으로 반발합니다. 패배했을 때 그렇게 하겠다면 인정하겠지만, 패배한 적도 없는 최고의 멤버들이라면, 그것에 맞게 존중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최고 스타였던 조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구단은 결국 명분에 밀려 1998년 한 해 더 선수단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감독 필 잭슨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1997~98년을 마지막으로 함께 뛰는 시즌이라는 의미로 ‘마지막 춤(Last Dance)’이라고 명명하고 선수들을 다독입니다.
결론적으로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구단의 애초 계획과는 반대로) 1998년 6번째 우승컵을 거머쥐고, (계획대로) 감독과 나머지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리고 조던은 은퇴해버리지요. 그리고 재정비 타이밍이 꼬여버린 시카고 불스는 이후 10년간 NBA 최하위권으로 떨어집니다.

<더 라스트 댄스>는 이런 미시적 욕망과 거시적 계획이 충돌하는 큰 이야기 속에,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듯이 촘촘하게 구성해놓았습니다. 역대 최고 실력을 갖췄음에도 농구의 신(神) 앞에서 무력하게 나가떨어졌던 수많은 인간계(!) 선수 이야기, 너무나도 힘들었던 가정사 탓에 안전하게 보험용 장기계약을 했던 것이 오히려 악재가 된 선수 이야기, 농구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노숙 부랑아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수비수이자 가장 괴상한 선수가 된 이야기, 대학 총장이었던 아버지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피살당한 상처를 이겨낸 선수 이야기, NBA 역사상 최고 실력자들을 영적인 카리스마로 장악한 감독 이야기 등등. 그리고 그들 모두의 중심에 있는 마이클 조던의 서사.

이야기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서사에는 두 명 이상의 소통이 관련되어 있기 마련이에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1인칭에서 3인칭까지의 다양한 시점에, 과거의 시각과 현재의 의견, 그리고 사회적 맥락까지 더해집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교차하면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중첩되기에 훨씬 역동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더 라스트 댄스>의 이야기는 ‘대화적’이에요. 스포츠에서 마이클 조던이 이끌었던 신화는 조던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극한으로 밀어붙였던 한 인간의 열정이 주변의 서사와 화학반응을 일으킨 산물인 겁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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