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들고 살게 되는 ‘말’ 하나

<곁>
‘곁’. 나의 말사전에 적힌 단어를 알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왜 이 단어가 먼저 떠올랐을까? 물음표를 따라가니 엄마의 숨이 끊어졌던 날이었다. 엄마는 여행을 가다가 버스 안에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가서 3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와 동생들은 그렇게 빨리 엄마가 떠날 줄 몰랐다.

“엄마가 우리 곁에 오래 있을줄 알았어.”

나의 말에 동생들도 동의했다. 우리의 곁에 엄마가 없을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엄마를 곁에서 떠나보내고 나서야 곁에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깨달았다. 그 깨달음 속에서 ‘곁’이라는 단어가 나의 마음속 말사전에 등재됐다. 곁에 엄마가 사라진 삶은 끔찍했다. 술과 벗 삼아 지내는 아버지만 남아있는 삶은 나의 곁을 황폐하게 했다.

청소년들을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는 삶을 살고 있다. 한 아이가 물었다.

“쌤은 내 곁에 오래 있을 거죠? 어디 안 가죠?”
“어디 갈 데 없으니까 걱정 마.”

울고 있던 아이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결심했다. 아이들이 원할 때까지는 곁에 있어주겠다고. 내가 그 아이의 곁에 있는 것은 내 곁에 엄마가 있는 것보다 초라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삶이 덜 황폐해지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아이들 곁에서 삶으로 말해주고 싶다. 넌 혼자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들려줄 수 있는 삶을 아이들의 곁에서 살고 싶다.

오선화
작가이자 상담사로 살고 있으며, 청소년들과 밥먹는 사람 ‘써나쌤’으로 알려져 있다. 지은 책으로는, <너는 문제없어>,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등이 있으며, 유튜브 ‘써나쌤tv’를 운영하고 있다.


<정직>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이사야 26장 7절)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NGO NPO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해서 말이지요. 특히 앞서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영역에서 기독교정신에 입각해서 일하는 많은 곳들이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3.1 운동을 주도했던 33인의 민족대표 중에도 약 1/2 이상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하지요. 그런 만큼 우리나라의 역사 경제 문화 복지 발전에 한국교회는 적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 중에 한 가지 이유로 ‘정직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봅니다. 특히 구제와 복지 영역에서는 정직이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거나 그 마저도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도움이 아니라 보여주기 식에 그쳐 버리는 일들이 많아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곳들이 그렇더라도 기독교 기반 단체나 교회는 ‘더’ 정직하고 달랐으면 하는 기대가 분명 사회 곳곳에서 있는데 똑같은 수준이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가 드러날 때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지요.
‘정직’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번 코비드-19에 대한 대처에서 우리나라는 초기에 입국금지를 당하기도 하고 다른 위험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진자에 대한 정보를 지나칠 정도로 정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이것이 결국 세계에서 가장 잘 대처하고 대안이 되는 나라라며 온 세계가 인정하고 칭찬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공적분야와 정치 사회 경제분야와 교회를 포함한 사회전반적인 영역에서 ‘정직’이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사회복지NGO (사)러빙핸즈는 도움이 필요한 1명의 아동·청소년을 1018(만 10~18세)을 자립하는 나이까지 끝까지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험담>
속담에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무게가 실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말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을까요?
몇 년 전 어떤 분과 사사로운 일로 인해 잠시 동안 헤어지게 되었는데, 헤어지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만남을 다시금 허락하실 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리고 비록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 비방하거나 험담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그 후 삼년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고속도로에서 7, 8중 추돌사고가 났고, 죽을 뻔 했다가 생명은 건지게 되었는데, 그때 생각나는 여러 명의 얼굴 중 한 사람이 저였다며, 긴 침묵을 깨고 달려온 것이랍니다. 다리에 보조기를 찬 채.
만나지 않는 동안 서로 상대방을 욕하거나 험담을 일삼았다면 다시 만났을 땐 낯 뜨거워 얼굴보기조차 민망하였을 텐데, 서로 헤어질 때 한 약속을 지켜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얘기처럼 예전보다 더욱 우애 깊은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하지만 대화 속에 각 사람의 인품이나 성품 그리고 믿음의 삶도 묻어 나옴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온갖 미사어구나 성경말씀을 인용하여도 삶에 신뢰가 가지 않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면 청산유수처럼 말하지 않아도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데, 장애인이거나 비장애인이거나 사람들은 모두 남의 이야기를 즐겨합니다. 그래서 사역하면서 가급적 남을 도마 위에 놓고 난도질하는 행위는 삼가라고 얘기합니다. 우리의 말 속에 어떤 것이 묻어나오고 있습니까.
제 신앙의 멘토였던 독일의 율크 할아버지를 기억합니다. 할아버지는 독일에 갈 때마다 자기 집으로 초대해 성경을 읽어주셨습니다. 어떨 때는 성경을 읽다 감동되시면 메시지도 전하지 않은 채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리셨습니다. 율크는 많은 말을 하기 보단 늘 섬기는 삶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시던 분이셨습니다.
오늘날 말의 홍수시대 속에서 영양가 없는 말을 남발하기 보다는 주변 형제자매들의 온갖 허물과 잘못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로 나아갈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따뜻해지리라 여겨집니다.

박신원
아름다운공동체 회장. 밀양에 있는 아름다운공동체는 소외된 이웃과 장애우, 가난한 이들을 사랑으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신앙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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