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끼고 본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찾아서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코로나의 여파가 사진을 하는 내게도 냉혹하게 불어 닥쳤다. 거래처들이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났고 결국 많은 일들이 끊겼다. 잘 버틸 문제가 아닌 당장의 생계문제였다. 급히 찾은 일은 설거지 아르바이트였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나이 오십 넘은 부분이 늘 걸림돌이었다.

그러던 중 감사하게도 한 한우 곱창집 주방보조를 하게 되었다. 저녁시간만 할 수 있어 시간적으로도 유용했다. 오랫동안 프리랜서 생활을 해서일까 직장을 새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김 주임으로 불렸고, 나이도 막내여서 사장님과 주방실장님들은 동생 대하듯 기분 나쁘지 않은 반말을 하신다. 익숙하지 않은 일과 분위기는 한 달도 안 돼 식구처럼 편해졌다.
사진만 했던 나로서는 규칙적인 시간에 단순노동만 하는 것이 익숙치 않았다. 처음 3주간은 온몸이 안 아픈 곳 없이 쑤시더니 이후 점차 근육이 생기면서 몸이 노동에 맞추어져 가고 있다. 저녁 7시부터 밤 12시까지 설거지는 기본, 김치 썰기, 청소, 잡심부름이다. 그동안 집설거지는 설거지가 아니었다.
코로나로 다른 가게들은 문 닫을 때 이 곱창집은 맛집으로 줄을 서서 먹을 때도 꽤 된다. 쉬지 않고 설거지를 해도 계속 쌓이는 그릇들을 볼 때면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멘탈의 시험 구간이다. 아마도 설거지를 그만두는 이유는 체력보다는 반복되는 압박감과 성취감 없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일은 결국 끝나는 시간이 있어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성취감이 온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의 반응들을 객관적으로 살피기 시작했고, 아는 얘기지만 몸은 적응하면 바뀌고 마음은 수시로 바뀐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주방에서의 5시간은 반복되는 치열한 몸의 일을 하지만 점차 내 마음 속에서는 사색과 묵상의 시간을 확장하고 있다. 인생의 의미를 캐어내고 회개가 있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예배의 시간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내게 일정한 노동의 시간은 몸의 순종을 통한 마음의 토양을 다지는 값진 시간이다.

내가 국민학교 때 어머니는 나이 마흔에 일을 시작하셨다. 외모로만 보면 당대의 배우 문희와 비슷할 정도로 미인이셨다. 가족을 돌보는 데는 관심이 없으셨던 아버지로 인해 꽃 같은 어머니는 온갖 거친 일을 가리지 않고 하셔야 했다.
처음 고깃집 식당에 취업해서 설거지를 시작하실 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이기적인 남편과 철없는 어린자식들을 뒤로하고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일을 하셨을까. 실수로 2층 높이 난간에서 추락하셔서 허리를 크게 다치셨음에도 기어코 홀로 일을 마치고 병원에도 안 가시고 집에서 끙끙대며 나를 보고 우시던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살아내셨고 어머니의 몸은 점차 노동자로 바뀌어 가셨다. 안마라도 해드리면 어깨와 등 근육이 마른 북어 같았다. 설거지 하면서 힘들 때마다 30년을 외롭게, 힘들게 일하신 어머니 생각이 나 가슴 아픈 눈물이 난다. 한 번은 요즘 설거지 하느라 고생한다며 내 손을 주물러 주시는데 어머니의 손을 보고 울컥 했다.
“엄마 얼굴은 청담동 사모님인데 손은 나무뿌리 같네….”
30년 넘게 일을 하시면서 허리를 다치시고, 양 손목은 골절 되셨고, 최근에는 무릎 관절 수술에 대상포진, 신경통까지 온통 종합병원이다.

곱창집 직원분들도 다 일에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다. 개인시간 없이 하루 두 탕씩 뛰고 퇴근 할 때는 기력이 다한 모습으로 퇴근하고 또 다음 날 이 일을 반복한다. 다들 가정을 살리는 전사들이다. 존경스럽고, 일하는 모습도 짠하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이분들이 더 살갑다.
부모님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하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받은 삶의 유산은 그 은혜가 말로 다함이 부족하다. 요즘 자전거로 퇴근하면서 노래 ‘상록수’를 자주 부른다. 내 삶의 바램으로 부르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를 때면 감동이 남다르다. 어머니는 내게 상록수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늘 푸르게 버텨주시고 살아내신 고난과 헌신, 성실하신 삶은 세상에 어머니로 오신 나의 예수다.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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