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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이 무서운 시대
동서양 공포영화 : 귀신과 좀비, 그리고 바이러스
[243호] 2020년 05월 01일 (금) 임택 @
   

사람들마다 공포심을 느끼는 대상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에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공포가 다릅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경험했던 위협적인 존재나 상황의 특징이 각종 공포 장르에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런 경향성은 공포영화 속에서 더 명확히 그려집니다.

동양,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동양의 농경민족 사이에선 ‘귀신’이 공포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폐쇄적인 구조의 농경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일정한 주기(cycle)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지요. 봄·여름·가을·겨울. 심으면 나고, 그걸 거두고, 다시 또 심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 인과관계가 끊어진다는 건, 곧 재앙이요, 파멸이구요. 귀신은 바로 그 인과관계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등장합니다. 뭔가의 연결이 단절되어 귀신의 한(恨)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그 원한을 풀어주어 인과관계를 다시 이어주면, 자연스레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귀신들은 특정한 대상에게만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농경사회라는 폐쇄적인 공동체는 한정적인 자원을 나눠가져야만 하는데, 만약 욕심이 많은 누군가가 독점한다면, 그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귀신은 대개 악하거나, 탐욕스러운 자들을 주로 위협합니다.

서양, 낯선 것이 무서워
반면 서양이나 유목민족 사이에선 ‘이방인’, 혹은 ‘낯선 곳’이 공포의 소재로 흔히 활용됩니다. 새로운 땅을 향해 이동하는 유목민의 입장에서 낯선 땅은 늘 위협적인 공간입니다. 경험해보지 않고선 그곳이 도움이 될지, 해(害)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위험을 무릅쓰고 맞닥뜨릴 수밖에 없지요.
또한, 교역을 통해서 문명을 발전시켜온 서양 사회에서, 이방인은 늘 경계의 대상입니다. 처음 만난 상대라고 한다면, 그들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사전에 확인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역시 그저 겪어볼 수밖에 없어요. 만약 자신들에게 항체가 없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상대가 갖고 있다면, 파멸적 몰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접촉’의 문제에 대해 늘 민감합니다.
그 접촉의 공포를 극대화한 캐릭터가 바로 요즘 할리우드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좀비’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에서 좀비는 흔히 변종 바이러스의 결과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접촉을 통해서 상대를 죽음으로 이끌지요. 동양 귀신처럼 착한 사람은 살려주고, 나쁜 놈만 골라서 죽이는 법이란 없습니다. 선악 개념 없이 그냥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들어갑니다.

접촉에 대한 공포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문화 국경이 사라지면서, 동서양 간 이런 공포영화의 구분이 거의 무화되었습니다. 상호 복제를 통해, 세계가 하나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귀신이 등장하는 심령공포 영화가 할리우드에서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동양 좀비 영화도 꽤 많이 나왔지요. 심지어 나홍진 감독의 <곡성>같이 귀신과 좀비를 결합한 동서양 하이브리드 공포물도 등장했습니다.
내수시장보다는 교역을 통해서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에 맞게, 요즘 우리나라 영화 제작자들은 귀신보단 좀비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부산행>이나 <창궐>, <킹덤> 같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반도> 또한 <부산행>의 속편 격인 좀비 영화입니다.
요즘 좀비물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 아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접촉의 공포를 극대화한 세기말 좀비물은 훨씬 더 활발하게 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접촉에 대한 공포감이 최고점을 찍은 상태입니다. 영화 속에서, 시체나 다름없으나 살아 움직이는 좀비가 밖에서 활보하는 동안, 살아 있는 인간은 좀비를 피해 건물이나 지하 속으로 숨어버렸죠. 죽은 자는 땅 위에서 돌아다니는데, 오히려 산 자가 땅속에, 혹은 (건물이라는) 관 속에 갇혀버린 겁니다. 게다가 좀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이기적인 인간들은 끊임없이 분열하고 다툽니다.

마찬가지로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에 있는, 죽어 있으나 살아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살아 있는 전 세계인을 집안으로 가두어버렸습니다. 몸만 격리된 것이 아니라, 심지어 마음까지도 갈라놓았습니다. 공포영화 속에서 좀비를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재현되었던 것을, 우린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영화 속 좀비는 바벨탑을 쌓고자 했던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겸손한 자세, 그리고 협력을 다시금 주문하지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질서 앞에 겸양을, 무한경쟁 자본주의 시스템 앞에 이타심을.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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