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배운 것들

영화 <다크 워터스>는 199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두 농부가 도시의 한 대형 로펌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둘은 농장의 젖소가 인근 강물을 마시고 이유 없이 죽어나간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몇 상자를 들고 ‘롭 빌럿’ 변호사를 찾는다. 화학기업을 변호하던 기업 전문 변호사 빌럿은 그 사건에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할머니 소개로 온 농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농장을 찾아간다. 웨스트버지니아에 듀폰 사가 쓰레기 매립지로 구입한 땅 근처에서 사육하던 농부의 소 190마리가 정신이상이나 병으로 죽은 것을 확인한 빌럿. 그는 이 문제 배후에 독성화학물질이 있음을 알게 되고 지난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 채,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과의 소송을 시작한다.

인류의 99%가 중독된 PFOA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크 워터스>는 197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그 범죄를 은폐했던 기업 듀폰을 고발하며 독성물질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이야기 혹은 거대악에 맞서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한 인간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지금도 그 싸움을 이어가는 롭 빌럿이라는 실존인물에게 경의를 가지게 됨과 동시에 우리가 사용하는 프라이팬, 일회용 음식용기, 콘택트렌즈, 우비, 부츠 등에 사용된 ‘테프론’에 독성폐기물질인 PFOA(Perfluorooctanoic Acid)가 들어있음을 알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C8’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화학물질은 생명체에 축적될 경우 암을 발생시키고 임산부에게는 태아 기형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영화 속에서 농부 부부가 암에 걸리는 모습, 듀폰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이 기형아를 출산한 일을 통해 형상화되는데 영화 카피 중 “인류의 99%는 이미 중독됐다”는 말은 괜한 위협이 아니다. 빌럿이 20여 년 동안 듀폰에 맞서 고독한 투쟁을 이어가 결국 2017년에 미국 법정이 듀폰에 6억7천100만 달러(약 8천억 원)의 배상을 선고하며 전 세계에 진실이 알려질 때까지 40여 년 동안 인류는 테프론에 오염되고 있었으므로.
원래 군대에서 쓰이던 방수 코팅용 화학물질이 주방까지 침투한 건 거대한 수익과 관련이 있다. 듀폰은 테프론을 상업용으로 쓰면 인체에 치명적일 것을 알면서도 거대한 수익을 창출해내던 코팅 프라이팬 판매를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거대기업과의 지난한 싸움의 결과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은 PFOA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그에 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독성물질에 대한 규제가 미흡한 게 현실이다.
이런 진실을 안 이상 계속 코팅 프라이팬이나 밥솥을 쓰기는 어렵다. 이럴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은 스테인리스나 무쇠로 만든 안전한 재질의 주방기구를 선택하는 것. 조금 무겁고 잘 벗겨져도 화학 코팅재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스테인리스를 쓰고 자주 프라이팬을 바꿔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판 다크 워터스
영화에서 롭 빌럿 역할을 한 배우 마크 러팔로는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헐크’로 잘 알려져 있지만 또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헐크>에서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무리에 맞서 싸웠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듀폰이라는 거대악에 맞서 싸우며 고통 받는 한 인간을 보여준다. 러팔로는 연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우리 삶이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위험 물질에 노출되어 있는지, 인류가 후손을 위해 싸워야 할 싸움이 어떤 종류의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독성물질 재해는 저 멀리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가깝게는 가습기 살균제, 유해물질 생리대 문제부터 반도체 노동자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도 관련한 사회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한 개인이 코팅 화학물질 제품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현실이다. 하지만 유해 독성물질에 관한 규제를 만들어내고 인류에게 각성을 일으키는 일 또한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다크 워터스>에서 배운다. 프라이팬을 바꾸고 더 나아가 이웃의 문제를 돌아보고 그 문제에 참여할 기꺼운 마음을 가진다면 당신이 또 한 명의 롭 빌럿이 될지도.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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