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픈 지혜에 대하여

요양원에 형을 보내드리고
“우리, 늙으면 아이 네와 같이 살아야 하나, 따로 살아야 하나?”
3, 40년 전, 아내와 이런 수수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퇴할 즈음의 사회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는 분위기가 되어있었지요.
요즘은 이런 말을 듣습니다.
“여보, 나 당신을 요양원에 보내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그러지요.
“내가 더 오래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요, 요양원에 가고 안 가고는 우리 늙은이들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달 형을 요양원에 실어다드리고 왔습니다. 자녀가 모두 집을 떠나 있고, 두 분만 지방에서 사셨지요. 그런데 두 분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습니다. 형은 치매성 질환이었고, 형수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두 분이 그렇게 되니 가정은 바로 해체되며, 두 분의 손때 묻은 살림들도 자녀들이 알아서 정리했습니다. 어디 손때만 묻었겠어요, 두 분에게는 하나하나에 진한 마음이 밴 아까운 세간이지요.
형을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걸음은 무거웠습니다. 그 심정을 몇 자 남겨보았네요.

[혼자 가는 길, 멀어져 가는 형의 모습에 마음이 저리다. 두 아들, 다섯 딸을 두었지. 보글보글 마음들을 부비며 살았어. 그런데 지금은 따로따로.
자식의 얼굴을 알아보고,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는데도 치매일까? 그런데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치매'라 이름하고는 노인요양원으로 가게 했다.
60년 넘게 같이 산 아내, 하루하루를 짚어가며 가쁜 숨을 이어가고 있어,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을, 그조차 모르고 밝은 얼굴로 “다녀올게” 그러며 갔으니 형이 치매인 것이 맞기는 맞다.
어느 어미가 갓난애를 기르다가 소통이 안 된다며 영아원에 맡기던가? 지적장애아이어도 품어 돌보는 게 어미인 것을. '엄마' 부르며 어미 얼굴을 알아보니 내 새끼요, 내 품의 자식이지.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저 한 몸 지탱하며 살기도 버거운 세상이 되고 말았구나. 절박하고 처절한 게 현실이 되고 말았어. 그러니 여기저기에 노인요양원이 들어서고, 그 요양원마다 마음 저린 걸음들로 북적인다.
“요양원은 혼자서 가는 걸음, 그 쓸쓸함을 태연히 삼키고, 자식들은 애써 태연한 척 그 요양원을 나ㆍ선ㆍ다.”]


가족간 거리두기
코로나19가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 늙은이에게는 ‘가족간 거리두기’로 읽히더군요. 가족거리두기는 벌써 시작된 것입니다. 사회구조가 그렇고, 우리의 생활패턴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직계조차 한 거처에 사는 것을 불가하게 만들었어요. 그 가족거리두기에는 외로움이 똬리를 틉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거기에 ‘편리’라는 명찰을 붙여두었고,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그 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쪽을 원할까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는 주어진 특성에 따라 각기 떨어져 사는 게 편리하고, 그게 지혜일 수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들이 각기 맞는 환경에 서식하듯 말입니다. 우리네의 전통이었던 대가족은 애초부터 불가해진 것이지요.
맞아요. 병약한 부모들에게는 서툰 손길보다는 전문화된 관리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주택구조까지도 그런 예스러운 섬김을 허락지 않으니.
그런데도 이 늙은이는 묻고 싶습니다. ‘서툰 손길의 자녀와 익숙한 손길의 타인’ 부모들은 어느 쪽을 원하실까요?
느릿느릿 가던 세상의 옷이 이 급속한 시대에 어울릴 수 없음은 당연하지요. 다만 ‘섬김’이 아니라 ‘처리’를 요구하는 형국이 된 것만 같아 그 아픔을 늙은이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들의 생각
숲에는 나무들이 가득합니다. 그중 몇이 정원으로 옮겨져 대접을 받습니다. 그 중 하나는 화분에 심겨졌습니다. 화분의 것은 철사로 꽁꽁 묶여 있기까지 합니다. 그런데요. 숲의 나무보다는 정원의 나무가, 정원의 나무보다는 화분의 나무가 더 높은 칭송을 듣고, 비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가치일 뿐입니다. 나무들의 생각은 아니지요.

임종수
한국교회의 전통을 문화적으로 새롭게 세워가는 데에 평생을 수고해왔다. 자연 친화적인 목회와 삶에도 탁월함을 보인다. 아름다운동행 초대 이사장이고 큰나무교회 원로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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