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격리하며 가진 마음을 다음 단계로 이어가기

2020년 봄이 바이러스로 뒤덮였다.
다들 조심 차원에서 일상의 한 부분을 내놓고 삶의 반경을 안전한 범위로 좁혔다. ‘코로나 의병’이라 붙여질 만한 각양 봉사자들의 땀과 수고를 들으며, ‘자가 격리 이 정도쯤이야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여긴다. 생각해보면 누굴 위해서인가. 거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감염병 대처를 칭찬하며 따르는 나라들과 외신 보도로 그간의 노고가 결실처럼 다가온다. 얼마나 모두들 애써왔는지. 각국에 흩어져 공부하고 일하던 이들이 자국의 일상 폐쇄에 집 찾아 들어오는 행렬을 보니 이 어려울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도 상황이 더 낫기에 찾을 수 있음이 얼마나 귀한지 헤아려보게 된다.
그간 오간 말들은 이렇게 달라졌다.

1) 집 안에서만 며칠 지냈더니 마음이 이상해요. 길가에 사람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2) 집안 구석을 치우며 정리하다 보니 좋은 면도 있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네요.
3)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는데 아이들 속에서, 집안일에 묻혀 지치고 무력감이 들어요.
4) 그래도 내 집에서 자유로운 거니까 감사하기도 합니다.
5) 집단 발병시킨 사람들의 개념 없고 이기적인 것에 화나고 어이가 없어요.
6) 우리나라가 감염에 한발 일찍 정점을 찍고 다스려지는 게 다행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불편과 고통을 말할 수 있는 건 ‘말할만한 환경’이라는 뜻이다. 다 함께 겪으며 나아지는 고통이라 드러내기 수치스럽지 않음이다. 어느 때나 사적인 고난과 비참함은 표현하기 힘든데 그것은 공감을 얻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너도나도 아는 일로 칩거해 지내는 사정은 서로 나누기 쉬운 것, 심지어는 여러 사람 만나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릴 일이 없으니 편하다고 말하기까지도 한다.
이제는 격리초반의 당황함을 뛰어넘어 보통의 생활과 그간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고 기억할 시점이다.

‘보통’을 그리워하며 일상에 감사하지 못했다는 말
사실 우리의 일상이란 평범하고 대부분 지루하게 이어지며 얼마의 고통이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말한다. 이제 ‘보통’이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드라마나 영화를 생각해보자. 스토리가 이어지며 각자의 우여곡절이 나와 ‘저렇게 애쓰며 사는 게 보통인가’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 경쟁 가운데 사고가 나고 갈등이 있는 모습들을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고 보여준 작품들을 대하며 말이다. 사회적인 공포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곧 내 문제, 가정의 문제가 도드라질 것이다.
어쩌면 바이러스만큼이나 두려운 경제적 압박과 교육, 직장 문제가 밀물처럼 덮칠지 모른다. 어쩌면 그간 자신만의 멈춤의 공간 가운데 평안을 누렸다고도 할 수 있다. 그간 내적인 결의를 했던 게 무엇이었나. 멈추면서 알게 된 것들~ 물질적인 면들을 좀 덜어내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포용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자세를 계속 귀히 여기며 생활의 안과 밖 비율을 맞추기로 다짐하는 거다.
그렇다. 그간 움츠려 못한 것들을 하겠다고 다들 나서면 어떤 복잡한 상황이 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말, 마인드 바이러스
퍼져나가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면에서 말은 바이러스를 닮았다. 많은 분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며 말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다고 얘기한다. 이산어록에는 ‘사람이 언어로 한때의 쾌감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말의 쾌감은 센 말이나 두드러지는 표현으로 관심을 받을 때 느껴진다. 그게 말 습관으로 되는 건 집중의 맛 때문이다.
그런 가벼운 관심이 좋아 익숙해져 있다면 아직 마스크를 쓰는 동안 강도를 낮추는 훈련을 하는 거다. 그러면 이런 말을 통해 관심을 끄는 사람이 보인다.
유머에도 누군가를 상대적으로 슬프게 하며 웃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또 어설픈 정보, 왜곡된 말들을 분간해내도록 한발 물러나 잘 들어야 한다.
불확실한 것은 듣는 데서 멈춰야 하고 편협된 말을 쏟는 이에게는 말이 전해온 순환을 되돌리도록 확실히 짚어낼 힘도 내야 한다. 마인드 바이러스를 말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말이나 노래로 시작된 작은 것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이 역시 작은 말조차 마음으로 퍼지는 현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면 말을 잘 분별하는 힘이 어디서 올까. 그것은 예수님의 순수한 마음과 지혜, 정의로움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거기에 나의 유익에 따르는 이기심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지니면 좋을 것
지난 몇 주 동안 병원의 외상 센터나 일반 병실에 환자 수가 퍽 줄었다고 한다. 그것은 생활에 약간의 긴장이 주는 좋은 효과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손 씻기를 강조하니 눈병, 감기가 부쩍 줄었다는 것이다.
가족 간에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마찰이 있기도 했으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꽤 들린다. 관계의 성장은 의사소통으로부터 시작되니 다소 갈등을 겪더라도 마음과 생각을 내보이는 것은 가족 간에 꼭 필요한 것임을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알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을 향한 외국의 객관적 평가, 찬사를 다소곳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도 될 듯하다. 자존감은 개인에 관한 것뿐 아니라 속한 공동체가 주는 의식 속에서도 생긴다.
그간 앞서서 일한 사람들과 그 뜻을 잘 따라간 모두가 업그레이드된 시민 의식을 느끼며 살아도 될 만큼 왔다. 단지 없애야 할 몇 단어가 있다. ‘헬~, ~수저’ 또는 사람 이름에 붙이는 나쁜 단어들.
기왕 감염 사태에 빠르고 투명한 대처를 한 것으로 호평 받았으니 이것을 잘 이어가는 나라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거다.

꼭 짚어야 할 병든 사람들
코로나19 사태로 예상치 못한 집단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조명된 것은 이 시기에 얻은 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젊은이들이 왜 건전하지 않은 단체 사람들에게 넘어갔는지 당혹감을 느꼈다.
그 이유를 유영권 교수의 ‘기독 상담학’에서 찾아보면 사이비 이단에 끌리는 사람들은 문화적, 심리적, 영적으로 안타까운 배경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기존 교회의 교인들로 교회들의 폐쇄적인 성향으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본다. 이어 이단들의 공부가 편협한 성서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삶의 의문들을 받아주는 신뢰할 분위기를 조성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곤란과 삶의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을 그들은 잘 알아내어 다가간다. 거기에 왠지 자율성을 갖지 못한 이들로서 확실하게 ‘자신을 얽매어주는 틀’을 선호하는 마음상태라면 잘 맞아 떨어진다.
자기애적 성향의 교주는 이런 이들에게 자극적인 교리 선포와 전체주의 스타일의 의식을 통해 강한 카리스마로 사로잡아가는 것이다.

어려운, 너무도 어려운 시기를 지내며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이 정체기를 빠져나온 후 나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 것인지. 그것이 있어야 이 지루한 정체의 기간이 마이너스로만 남지 않을 거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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