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모두 낯선 경험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에선 예배 모임을 실시간 온라인 중계로 대신하고, 대학에선 전체 수업을 사이버 화상 강의로 시행하고 있지요. 이러다 보니, 목회자와 교수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 자체 보다 그 전달 방법에 더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고, 모든 걸 직접 대면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배급환경의 혁명적 전환 앞당겨
영화산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영화의 정체성 수정 작업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영화 혹은 시네마란, 본디 큰 스크린을 갖춘 극장에서 집단으로 함께 보는 것이었어요. 스크린이란 제단을 마주하고 벌이는 집단의 예식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극장가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극장 매출이 98% 가까이 줄어든 상태예요. 반면에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온라인 배급 서비스 사용자 수가 폭등하면서, 영화 배급 환경의 혁명적 전환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극장을 찾는 대신,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혼자 감상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거지요.
그동안 영화계에선 온라인 배급 서비스를 두고 상당히 말들이 많았습니다. 극장 개봉이 최우선이고, 그것이 다 끝난 뒤에 온라인으로 넘어가야지, ‘넷플릭스’처럼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배급하고 소비되는 시스템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작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최고의 찬사를 받았음에도 ‘넷플릭스’ 영화라는 이유로 작품상을 놓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는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에서 아예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면서,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던 영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넷플릭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젠 ‘넷플릭스’를 영화의 또 다른 플랫폼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영화가 스크린이라는 신성한 제단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이런 플랫폼의 변화는 영화 미학 전반의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조그만 화면으로 영화를 감상하다 보니, 롱숏(약간 멀리서 인물 전신을 잡는 화면)보다는 인물의 표정이나 느낌이 훨씬 더 명확한 미디엄숏(상반신 위주 화면)이나 클로즈업 위주로 장면이 구성될 수밖에 없어요. 더불어 내용 또한 대중의 주류 취향에 맞춘 획일화에서 벗어나 훨씬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분화될 겁니다. 공공이 공감하는 예술에서, 개인의 개별적 취향에 맞춘 예술로 진화하는 거죠.

근대로 나아가는 문 연 흑사병
이렇듯 전염병으로 인해 시대와 사회가 바뀌는 일은 과거부터 꾸준히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1347년 유럽에 불어 닥친 대흑사병이 있지요. 흑사병은 당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됩니다. 유럽 사람의 최소 30%에서 최대 50%까지 죽어 나가면서, 노동력의 손실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봉건영주와 귀족들은 살아남은 농노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며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파이를 살아남은 소수가 나눠 가지면서, 서민들 입장에선 생존의 문제에서 해방되어 등 따숩고 배부른 날이 도래합니다. 이러다 보니 눈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가 생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집안을 꾸미고, 놀이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이건 곧 패션과 미술, 그리고 오락예술의 발달로 이어져요. 그렇게 서민층의 지위와 환경이 나아지면서, 이후 시민계급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더불어 예술가들이 흑사병을 피해 장기간 격리에 들어가, 선배들이 쌓아온 중세예술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결과물을 내어놓습니다. 원근법이 바로 그 르네상스 예술의 대표적인 성과죠. 이전엔 교회의 시선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면, 이후엔 바로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냅니다. 듣기만 하던, 즉 순종만 하던 인간들이 드디어 ‘보기’ 시작한 거예요.
게다가 흑사병으로 인해 수많은 성직자가 죽어 나가고, 수도원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거길 빈자리로 놔둘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너무나 많이 비어나가다 보니, 미처 준비 안 된 성직자들로 그 자릴 채우게 되었고, 그건 곧 서민들과 밀접 접촉하는 교회 권력 최말단부의 부패를 낳게 됩니다. 결국, 서민 밑바닥 정서에서부터 교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었어요. 종합적으로 이 모든 정황이 먼 훗날 종교개혁을 추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렇듯 흑사병은 중세를 닫고, 근대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다양한 비대면 인프라 구축될 것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떨까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확신할 순 없지만, 산업· 교육계뿐 아니라, 종교계 환경이 전반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건 분명해 보입니다. 훨씬 다양한 비대면(非對面) 인프라가 구축될 것이고, 새로운 대안들을 모색해 나갈 겁니다. 우린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종합적으로 테스트 받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이 난국을 극복하느냐에 따라, 재도약할 수도, 혹은 몰락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번 사태로 인해 흔들린다면, 기존 시스템을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겁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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