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최민석 지음 / 비채, 2018년, 268쪽

이 시대에 나는 EBS 라디오 FM 104.5 주파수만 주구장창 고수하는 중이다. 거기엔 소소한 이유가 몇가지 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일하는지라 가끔은 누군가와 공간을 나누면 좋겠다고 바라는데, 라디오를 들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시간을 함께하는 듯하다. 매일 똑같은 프로그램을 듣다보면 고정 출연진에 대해서는 심지어 모종의 친밀감마저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일까, 그들 중 한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하마터면 인사할 뻔 했다.
또한 가끔은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라디오에 등장해서 반갑기도 한데, 좀 더 귀를 기울이다 보면 유명 인사를 안다는 뿌듯한 마음이 생기는 동시에 비슷한 또래인데도 사회적으로 이룬 게 많은 것에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

하필 EBS 라디오만 듣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봤는데,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까딱 잘못하면 한없이 게을러지기 십상인데 교육 방송이라면 마치 야간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선생님처럼 내 중심을 잡아주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도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영어도 배우고, 생활 속 법률 정보도 얻고, 책도 읽고, 시 낭독도 듣고,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체험하는 등 EBS 라디오를 들으며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는가 싶던 찰라, 퇴근 시간쯤 방송되는 최민석 작가의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다소 껄끄러운 문제가 생겼다.
“남들이 다 읽은 것 같은 책을 나만 읽지 않은 것 같으면 왠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죠? 그래서 저희 ‘양심의 가책’은 여러분들이 15분만 투자를 해서 들으시면 왠지 읽은 듯한 느낌이 들게끔 해드립니다. 말하자면 밥은 먹지 않았지만 밥을 먹은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게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죠.”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정말로 책을 사서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처럼 되었으니까. 그런데 몇 회가 지나자 진행자의 멘트가 조금씩 바뀌었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의 책은 방송에서 소개하는 위대한 책들에 비할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털끝만큼의 소용은 분명히 있다며 꼭 한 번 읽어 보라고 했다.

결국 그의 끈질긴 부탁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 찾는 이가 별로 없어 도서관 창고 서가에 꽂혀있다는 책을 사서를 귀찮게 하면서까지 꺼내오게 만들었다. 이렇게 손에 넣은 최민석 작가의 <고민과 소설가>. 이 책은 독자가 고민에 대해 질문하면 작가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아, 이쯤 되면 나도 이런 고민을 상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는 그냥 라디오를 들었을 뿐인데, 방송을 듣고 별 관심 없던 작가님의 책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그 책에서 작가님은 책을 빌려서 읽지 말고 꼭 사서 읽으라고 당부하시네요. 이러다간 정말이지 이미 다 읽은 책인데도 사게 될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이렇게 작가님의 책 소개까지 세상 친절하게 쓰고 있잖아요. 제가 지나치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아닐까요?”

P.S. 책 소개는 안 하고 엉뚱한 소리만 한 게 아닌가 싶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말씀드리는데요, 이 책은 최민석이라는 소설가가 주로 대학생들이 고민하는 자아, 사랑, 관계, 미래 등에 대해서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을 모은 에세이입니다. 바로 이 글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최민석 작가의 책 판매 포인트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요?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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