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잠은 없다.
맥베스가 잠을 죽였다.”

19세기 아일랜드 출신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다만 유혹은 예외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인간이 유혹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설명해주는 경구이다. 그렇다. 인간은 유혹이 매우 위험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독극물보다 훨씬 위험한 그 ‘유혹’에 여전히 호기심을 버리지 못한다.
인간을 사람에서 짐승으로 추락시키는 유혹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권력에 대한 야욕(野慾)이다. 그 유혹에 붙잡히는 순간 신의, 도덕, 우정은 가차 없이 버려진다. 권력으로 가는 길은 너무 좁아서 자신 외에 다른 것과 같이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가 문득 유혹과 권력에 흔들릴 때 급히 꺼내드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셰익스피어가 42세에 집필한 희곡 <맥베스>(1606)이다.

스코틀랜드 국왕 던컨의 사촌이자 탁월한 장군이었던 맥베스가 전우 뱅코우와 함께 반란군을 제압하고 돌아오던 날, 광야에서 듣게 된 세 마녀의 예언은 선했던 맥베스를 ‘야수(野獸)’로 변모시킨다. 세 마녀는 각각 맥베스를 뒤흔드는 예언을 쏟아냈는데, 그 내용은 ‘지금 글램즈 영주인 맥베스가 곧 코더 영주가 되고 이어 국왕이 된다’는 것이다. 맥베스는 처음에는 이 예언을 불신하나 곧 당도한 사신으로부터 국왕 던컨이 반란군 코더 영주의 지위를 맥베스에게 하사했다는 전갈을 받는 순간 맥베스는 너무 빨리 이루어지는 예언에 놀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국왕의 자리뿐이 아닌가?

왕권에 대한 유혹에 흔들린 맥베스는 예언을 담은 편지를 글램즈 성에 있는 부인에게 보낸다. 이 편지를 읽은 부인은 곧 ‘맥베스 국왕 만들기’에 돌입한다. 왕이 되기에는 너무 선량한 맥베스를 염려한 부인은 자신이 국왕살해의 주체가 되기로 결심하고 ‘악의 신’에게 “악령이여, 이리 와서 나의 여성성을 제거하고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무시무시한 잔인함으로 채워다오, 내 피를 응고시켜 연민을 막고 천륜도 흐르지 못하게 해다오. 내 가슴을 젖 대신 담즙으로 채워다오”라는 기도를 한다.

전쟁에 승리한 맥베스의 공로를 치하한 국왕 던컨은 그날 맥베스의 거처인 글램즈 성에서 하루를 머물겠다고 말한다. 이 소식을 들은 맥베스 부인은 갈등하는 맥베스를 설득하여 던컨을 침실에서 살해하게 한 후 그 죄를 국왕을 시중들던 두 군사에게 씌운다.
이튿날 죽음이 알려지고 이 죽음에 의문을 갖은 던컨의 두 아들 멜컴과 도널베인은 각각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로 도피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부분에서 뜻밖의 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그는 맥베스의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다. 술에 취한 상태로 갑자기 등장한 문지기는 자신을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로 소개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국왕을 살해하여 온 집안에 피가 낭자한 글램즈 성(城)은 지옥과 다를 바 없으니 자신은 이제 ‘지옥의 문지기’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맥베스가 이제 ‘지옥에 가야 할 악인’이 되었다는 은유와 비틀기가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천재성이 빛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맥베스를 찾아온 것은 기쁨이 아닌 ‘불안’이었다, 국왕을 살해했다는 죄의식과 더불어 도망친 두 왕자, 그날 같은 예언을 들었던 전우 뱅코우 때문이다. 결국 맥베스는 그 불안으로 인해 불면(不眠)에 시달린다. 급기야는 “이제 잠은 없다. 맥베스가 잠을 죽였다”는 환청을 들으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또한 맥베스 부인도 몽유병에 시달리며 밤마다 손에 묻은 피를 물에 씻는 동작을 하며 돌아다닌다. 이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얻고도 만족은 얻지 못하는 ‘모순’을 살게 된다. 결국 불안을 극복하고자 충신 뱅코우를 살해하고, 이어 자신의 즉위식에 불참한 신하 맥더프를 살해하려다 그의 가족을 학살하게 된다.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맥베스는 다시 세 마녀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맥더프를 조심하라. 여자가 낳은 자는 맥베스를 해치지 못한다. 거대한 버어남 숲이 던시네인 언덕에 올 때까지 맥베스는 멸망하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예언을 듣게 된다. 이 예언에 만족한 맥베스는 다시 오만한 폭정을 행사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충신들은 그의 곁을 떠난다. 맥베스의 아내도 죄의식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다. 한편 국왕 던컨의 죽음 이후 도피하여 영국에 머물던 맬컴 왕자는 자신을 찾아온 맥더프와 협력하여 맥베스와 일전(一戰)을 벌인다. 맬컴과 맥더프는 군사들에게 ‘버어남 숲’의 나뭇가지를 머리에 씌어 움직이게 한다. 결국 맥베스는 여자의 몸을 통한 자연적 출산이 아닌 제왕절개로 태어난 맥더프에게 죽음을 맞는다.

‘유혹’은 ‘칼끝에 묻어 있은 꿀’과 같다. 따라서 섣불리 핥다가 자칫 혀를 잘릴 수 있다. 바다에 빠져 익사(溺死)한 자보다 유혹에 빠져 익사한 자가 더 많다. 한순간에 충신을 역적으로, 행복했던 글램즈 성주의 가정을 불면과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 것이 유혹이 감추고 있는 민낯이기 때문이다.
그대여, 지금 그대 귀에 그때 맥베스에게 속삭였던 ‘세 마녀의 달콤한 예언’이 들리는가? 속히 두 손으로 귀를 막을지, 아니면 달콤한 미소를 지을지 선택하라.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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