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고통 앞에 멋있고 괜찮은 척 해봐야 겉모습일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수도원에 사는 이들이 매일의 회개시간에 무얼 회개할까 싶기도 했으나 스스로 격리되어 살아보니 내 안의 죄성, 그것을 가린 모습들이 좀 더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마치 주께서 이런 모습을 기다리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결한 신부, 주님은 우리를 그런 모습으로 단장시키고 싶어 하시나 봅니다. 우리 안에 섞여있는 교만과 그 안의 열등감, 그로 인한 괴로움을 보라 하시는 듯합니다. 그 괴로움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다른 이에게 원인을 돌리는 모습이 보이십니까(심리학 용어로 ‘투사’). 마치 바이러스의 변형처럼 이리저리 다른 모습으로 구부러지며 살 길을 찾는 모습 말입니다.
결국은 이생의 자랑, 육신의 욕심, 안목의 정욕을 따라 움직여 온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내적인 욕망을 은밀하게 즐기는 악의 세계가 매스컴에 드러나는 것 외에도 얼마나 많은지요.

이 시간, 이 기간이 가볍게 지나가지 않길 바람은 우리의 왜곡된 죄성을 조금이라도 보게 하기 위함이라 느끼며 한 번 더 자신을 되돌아보길 권합니다. 그러고 나면 비 오고 난 뒤 하루에 1미터씩도 자란다는 죽순처럼(우후죽순) 우리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요.
빌 게이츠의 말 일부를 인용합니다.

“코로나19는 길지 않은 인생에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무엇을 구입하는 것보다 중요하며, 삶에 본질적인 것과 사치품을 나눠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일 뿐,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창조된 뜻대로 서로 보살피며 보탬이 되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서로 지원하고 지지할 수도 있고, 이기적으로 나만 돌볼 수도 있음을.
이 시간이 종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코로나19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배워야 할 것을 배울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의 회로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19를 위대한 교정자로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아온 중요한 교훈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주어졌고, 그 교훈을 배울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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