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질문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이란 이해하지 못하는 한 대상을 이해하고자, 그 대상을 향해 놓는 ‘다리’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이해를 한없이 넓혀가는 아이들은, 그래서 질문이 늘 넘친다.

‘비는 왜 와요?’, ‘남자와 여자는 왜 다르게 생겼어요?’, ‘저녁이 되면 하늘은 왜 자꾸 빨개져요?’처럼 백과사전 속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들.
‘물웅덩이에서 왜 첨벙첨벙 뛰면 안 돼요?’, ‘왜 종이 안에만 그림을 그려야 해요?’처럼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의 세계에 아이들 내면의 자유로움이 부딪히며 탄생하는 질문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게 화가 났을 땐 어떻게 해요?’, ‘내 소중한 장난감을 친구가 함부로 다룰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친구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을 때, 난 무얼 해야 하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질문들.

그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나가다 보면, 어른이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보다 부끄러운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다 안다고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다.
나이든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은 그래서 참 놀랍다. 시인의 호기심 넘치는 질문들은 세상을 처음 접하는 아이의 시선이기도 하고, 성숙함이 무르익은 지혜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 물음표를 따라가다 보면 무뎌진 일상의 의식을 깨워 감각의 날을 세우게 된다. 삶의 중심을 향해 던져진 질문은 묵상이 되고, 자세가 되고, 태도가 된다.
‘왜 숲은 눈을 기다리기 위해서만 옷을 벗었을까?’, ‘나뭇잎들은 노란색을 느낄 때 왜 자살을 할까?’, ‘바다에 닿지 못한 강들은 어떤 별들과 이야기를 계속할까?’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마침내 나 자신을 찾은 곳은 그들이 나를 잃어버렸던 곳인가?’

답을 구하고자 하는 세상에 시인은 질문을 던진다. 답을 달아보려 애쓰지만,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질문의 끝에는 적막이 남는다. 답은 들어있지 않지만 그 적막이 주는 평화가 영혼을 돌본다. 답은 도착하고 멈추고 완성하게 만들지만, 질문은 파동을 만들어 흐르고 이어지게 만들어 끝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서로 연결되게 만든다. 돌봄이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묻고, 너에게 묻는 일은 그 자체로 서로를 돌보는 일이며,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니 말이다.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