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놀라운 솜씨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그림자를 풀밭에서 살짝 거둬들여 둘둘 말아
접어서 주머니 안에 집어넣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출신 독일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가 181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에 지닌 허구(虛構)를 환상적 은유로 담아낸 수작이다.

어느 날 가난한 청년 페터 슐레밀이 항구에 도착한다. 주머니에는 직장을 알선해줄 토마스 존에게 보일 추천장이 있었다. 슐레밀은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멸시하는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저녁 파티중인 존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비로운 존재인 ‘회색 옷을 입은 남자’를 보게 된다. 그 ‘회색 옷 남자’는 존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즉시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주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존이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고 하면 이제껏 없던 망원경을 주머니에서 꺼내준다. 파티에 있던 사람들은 그 남자의 신비로운 능력에 환호를 보냈지만 슐레밀은 꺼림칙하여 파티장소를 떠난다.
그런데 그 남자가 뒤따라와 “당신의 그림자를 내게 팔면 금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황금자루를 주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가난이 곧 ‘형벌’이었던 슐레밀은 그 거래에 동의한다.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즉시 풀밭에 길게 늘어져 있던 슐레밀의 그림자를 둘둘 말아 주머니에 넣고는 “몇 년 후에 다시 나를 보게 될 것이요”란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쓸모없는 그림자’를 내주고 ‘가장 쓸모 있는 금화’를 얻는 꽤 괜찮은 거래를 한 슐레밀은 잠시 행복에 젖는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밖으로 나온 슐레밀을 본 아이들과 여인들이 “저 사람은 악마야”라며 수군거린다.
순간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게 된 슐레밀, 그러나 계약은 번복될 수 없었다. 결국 슐레밀은 그림자가 비치는 ‘낮’에는 집에 칩거하다가 그림자가 비칠 염려가 없는 ‘밤’에만 활동하게 된다. 그랬다. 단지 그림자만 아닌 ‘낮’까지 판 것이며, 그것은 곧 ‘삶의 절반(折半)’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품성이 착했던 슐레밀은 그 금화로 선행을 베풀어 사람들로부터 페터 슐레밀 백작으로 불리게 되고, 그러던 중 미나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약혼을 앞두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미나의 아버지에게 그 비밀이 발각되어 파혼을 당한다.
그때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슐레밀을 다시 찾아와 “너의 그림자를 돌려줄 터이니 네 영혼을 내게 팔라”라고 제안한다. 그 순간 이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악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슐레밀은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 후 금화를 쏟아내던 황금자루를 강가에 던져버리고 멀리 떠난다. 황금자루를 버린 후 슐레밀은 다시 가난해지지만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슐레밀은 우연히 갖게 된 ‘한걸음에 7마일을 가는 장화’를 신고 온 세상을 다니며 자연을 연구하며 지낸다.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흉통(胸痛)’에 시달린다. 이 시대가 황금자루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림자는 물론 영혼까지 팔 수 있는 ‘욕망의 시대’라서 그럴 것이다.
욕망은 삶의 모든 순수(純粹)를 집어 삼키는 거대한 포식자(飽食者)이다. 욕망을 의미하는 라틴어 ‘데시데라티오(desideratio)’가 ‘여전히 목마르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괴테가 “욕망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따라서 욕망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사실 가난했던 슐레밀에게 ‘그림자’는 황금에 비해 하찮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하찮은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의 절반’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하찮아 보이는 작은 것’을 잃고 난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실 황금에 비해 양심, 도덕, 배려. 예의 같은 것은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그 하찮아 보이는 그 양심, 도덕 같은 것들이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오염된 이 세상을 정화(淨化)시키는 ‘하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진실을 작품 속의 슐레밀은 처음에는 몰랐고 나중에는 알게 된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자유가 있다. 그 하나는 ‘욕망의 자유’이며, 다른 하나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처음 슐레밀은 욕망의 자유를 거절 못해 첫 번째 제안을 수락한 후 황금을 얻고도 불행해진다. 그러나 이후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한 슐레밀은 두 번째 제안을 거절하여 가난해지나 오히려 행복해진다. 문득 ‘그대의 그림자’는 잘 있는지 그 안부가 궁금하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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