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난민, 우리도 ‘생태 빚’이 있다

우리는 주로 어느 순간에 기후 변화를 피부로 느낄까? 겨울이 춥지 않고 눈이 거의 내리지 않으며 평년보다 고온을 유지할 때, 여름 장마철에도 비가 온 듯 오지 않은 듯 지나가버리고 찜통더위가 바로 찾아와 버릴 때, 8월 내내 폭염주의보가 일상이 되어 피로와 짜증이 몰려올 때 우리는 이상 기후를 느낀다. 어? 기후변화가 문제라고 하는데, 정말 이러다가 겨울이 사라지는 거 아냐? 우리가 기후변화를 이 정도 느낄 때 누군가는 기후변화로 인해 집과 고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낯선지.

1초에 1명, 기후변화로 집 떠나는 사람들
유엔난민기구(The UN Refugee Agency)에 따르면, 1초에 1명씩 기후변화로 집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1년이면 2천 5백만 명이 가뭄과 홍수, 태풍 등의 기후변화로 고향을 떠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난민을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기근,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이라고 할 때, 이전에는 전쟁과 테러를 이유로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자연재해로 인한 망명자들 일명 ‘환경 난민’(Environmental Refugees)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환경 난민의 초기 사례는, 12년 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얀마에 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가 들이닥치면서 약 14만 명이 숨졌는데, 이때 닥친 사이클론은 가뭄과 사막화로 인한 것으로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피해로 해석되고 있다. 미얀마는 기후변화 피해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로 지금도 매년 홍수와 가뭄이 일어나 심각한 기후변화 영향권 아래에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 또한 환경 난민이 발생하는 대표적 나라다. 투발루는 1년에 5mm씩 바다에 잠기고 있어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국토 전체가 수몰될 것으로 유엔은 내다보고 있다. 이에 투발루 정부는 약 1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을 모두 인근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로 이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호주로부터는 난민수용을 전면 거절당하기도 했다. 수몰 위기에 처한 건 평균 해발고도가 3m에 불과한 투발루뿐만이 아니다. 3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근 섬나라인 키리바시 또한 매년 1cm씩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어 이번 세기 안에 섬 모두가 가라앉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인근 국가의 난민 수용 정책에 ‘환경 난민’을 위한 조항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더불어 가뭄으로 초원과 농토가 초토화되어 난민이 발생하기도 한다. 서아프리카의 사헬지역은 사막의 남진으로 약 20여 만 명의 사람들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앞서 언급했던 미얀마 중부 건조지역은 과거 인구 1,500만 명이 거주했던 지역이지만 현재 극심한 사막화로 80% 이상의 농촌 인구들이 생업과 거주지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환경 난민을 생각하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는 오는 2050년,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로 최대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변이 없는 한, 약 30년 뒤에는 전 세계 인구의 15%에 달하는 사람들이 환경 난민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 이면에는 실상 화석연료에 기반한 고에너지 소비형 삶을 사는 선진국이 존재하는 한편 기후변화에 거의 책임이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모순이 잠재해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한국에 사는 우리들 또한 ‘생태적 빚’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환경난민을 후원하는 일을 시작해도 좋고, 삶의 근본 양식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차를 타기보다 걷고, 쓰레기를 줄이는 삶으로 조금씩 생태 빚을 갚아보자.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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