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새로움을 긷다, 읽기를 통해서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앞집에서 ‘세계아동문학전집’을 들여놓았다. 한옥 마루에 놓인 빨간색 딱딱한 겉표지의 50권 전집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엄마는 내 맘을 알고 한 권씩 빌려와 주었다. 삼총사, 소공녀, 아라비안나이트, 보물섬 등 읽을 때마다 주인공이 되어 가슴을 졸이다가 해피 엔딩엔 두 팔을 휘두르며 시원해하곤 했다. 상상의 날개를 펼쳐간 어린 시절 고마운 기억이다.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친구가 자그마한 소리로 ‘니미 니미 노트’라 중얼거렸다. 어, “톰 티트 토트?” 내가 이렇게 이어가자 친구는 놀라며 반가워 손뼉을 쳤다.
영국동화집 <톰 티트 토트>에 나오던 대목을 긴 세월 기억한 두 사람이 주문을 나눠 외운 것이다. 이후 우린 잘 통하는 사이가 되었고, ‘사랑하면 진짜가 된다’는 우단으로 만든 토끼 얘기도 나누며 가슴을 콩닥거렸다. 누군가에게 진짜가 되고 싶고, 내가 가진 것들을 진짜로 만들고 싶던 마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아동 도서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서는 유명한 아동문학 전집이 아닌 어린이를 위한 얇은 단행본들을 접하게 되었다. 도서실에서 한 아름씩 빌려와 아이에게 많이 읽히려는 게 목적이었지만 처음 보는 창작 동화의 그림과 글에 나 자신이 빠져들고 있었다. <배고픈 애벌레>, <너무 맛있는 소시지>, <생쥐 프레드릭>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미국 노예시대 아이들 시리즈다. 교훈이나 설명을 길게 하지 않고 그림과 상황 묘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인종 차별 이야기는 ‘왜?’라는 질문을 하게 하며 나를 돌아보게 했다. 흑인 여자아이들을 담배밭에 일렬로 세워 잎사귀 뒤에 붙은 벌레를 잡게 하고, 검사관이 뒤따라오며 벌레를 발견하면 그것을 아이 입에 넣는 장면에선 눈물이 쏟아졌다. 학대를 못 견뎌 한밤중에 도망치려 강물을 건너던 때 숨소리도 내지 못하던 아이의 눈망울을 그린 페이지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가까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
동화책은 평생 성장해가는 우리에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짧은 문장으로 집중해 엮어가 쉽게 빠져들게 한다. 어릴 때 동화책을 충분히 읽으며 자라지 못한 세대는 물론, 나름 읽었던 어른들도 지금 다시 보면 다른 깊이로 새롭게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 풍부한 정서를 담아 삶의 다양한 면을 보게 하는 창작 동화를 읽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있다. 삶은 어느 세대든 크고 작은 상처들을 겪으며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용기가 필요하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것.
그런 배경을 가지고 좋은 창작한 동화들이 많이 나오는데 <우주로 가는 계단>(전수경 저)은 사고로 가족을 잃고 후유증으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소녀를 보며 우리는 그 성장 과정을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다.
또 <슬픔을 건너다>(홍승연 저)에서는 흘려 지나쳐지지 않는 상처와 슬픔의 블록들을, 들여다보고 견디는 중에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와 얘깃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의미를 찾게 하는 동화는 ‘지금의 나’를 확인하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동화는?
동화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동화는 물론 중요하다.
잠자리에서 3~5세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면 아이의 언어 발달 능력이 활발해져 학업 성취가 높아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편안한 상태에서 부모가 책을 읽어줄 때, 아이는 청각과 시각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를 종합하며 이미지를 떠올려 줄거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간다는 것이다(신시내티 어린이 병원, 허톤 박사). 바로 창의력이 풍부해짐을 말한다.
스스로 글씨를 읽는 때는 독해력이 좋아지고 종합적 이해와 함께 어휘, 단어가 풍부해짐은 두말할 것이 없다. 어린 시절의 동화 읽기는 평생의 독서 습관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동화는 어떻게 선택할까
나라마다 옛날이야기로 시작된 전래 동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야기’는 삶에서 뗄 수 없는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재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신 이야기, 호랑이가 잡아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나름 각색을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상대에 맞게 전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창작 동화가 나온 것은 덴마크의 안데르센에 의해 아이들을 위한 문학으로 시작된 이래 괴테를 비롯한 각국의 문호들이 장르를 형성해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와서 현실의 문제를 아이들의 정서에 맞게 절제된 구성과 시적인 표현들로 열어갔는데 권정생, 정채봉 작가가 동화 문학의 아름다움을 펼친 1세대로 꼽힌다.
90년대 이후에는 고학력 여성 동화작가들의 섬세함과 따스한 화해를 특질로 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며 문단이 매우 풍성해졌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유명한 동화뿐 아니라 얇고 큰 글씨의 새로운 동화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성장과 깨달음을 이어갈 수 있다. 따스해지는 햇살 아래 마음에 드는 그림동화를 골라 잘 들여다보는 것도 여러 각도의 좋은 에너지를 얻는 길임을 강조하고 싶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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