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자연관찰 시간에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던 작은 생명체가 있다. 바로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다. 서 있는 것만도 신기한데, 아주 안정감 있는 자세로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있다. ‘나도 소금쟁이처럼 가벼우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가만, 소금쟁이만큼 가벼운 다른 곤충은 모두 물에 빠지잖아! 발에 무엇이 달렸기에 물 위에서도 저렇게 편안할 수 있는 거지?’ 어린 나는 마치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기적을 본 것처럼 놀라워했다.

이런 놀라운 능력 덕분에 소금쟁이는 별명도 많다. 피겨스케이터처럼 유연하게 물 위를 미끄러져 ‘Water skater’, 물 위를 성큼성큼 걷는다 하여 ‘Water strider’, 예수처럼 물 위를 걷는다 하여 ‘Jesus bug’….

사실 소금쟁이가 가진 비밀은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첫 번째는 온 몸을 뒤덮고 있는 발수성 잔털, 두 번째는 40mg의 가벼운 무게를 긴 다리로 알맞게 분산시키는 균형감, 세 번째는 물의 끌어당기는 성질인 표면장력을 이용할 줄 아는 소금쟁이의 능력이다.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곤충들은 단단한 대지를 밀어냄으로써 방향을 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높이 뛰어야 하는 순간을 위해서는 짧은 순간, 다리를 아래로 누르고 강한 힘을 주어 땅을 밀어낸다. 하지만 소금쟁이에게는 단단한 대지가 없다. 힘을 줄수록, 강하게 밀어낼수록 불리하다. 그래서 소금쟁이는 단순히 힘을 주어 누르는 것을 택하는 대신, 넓게 벌렸던 다리를 하나로 모으며, 물에 빠지지 않을 만큼의 힘을 모아 뛰어오른다. 더불어 물을 밀어내는 동시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고, 그 사이 뒷다리로 방향을 잡아낸다.
어른이 되어서야 가만히 들여다본 소금쟁이의 이런 노력은 하나의 완전한 미학처럼 다가왔다.

살아가다보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물처럼 불안하게만 느껴질 때가 반드시 온다. 있는 힘껏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가라앉게 만들고, 버둥거릴수록 물속으로 더 깊이 빠지기도 한다. 열심히 나아갔지만, 거대한 파도가 제자리로 돌려놓아 원망스러운 날도 온다. 작고 연약한 소금쟁이가 살아가는 바다는 어쩌면 더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금쟁이는 자기 한계치만큼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최적의 힘 빼기를 터득했다. 물 위에 올려놓은 여섯 개의 발이 이뤄낸, 절묘한 균형점 위에서 소금쟁이는 자유롭고, 유연하다.
바닷물이 자신의 방향을 거스를 땐 온 힘을 다해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제자리를 지켜내고, 원하는 방향으로 물이 흐를 때면 같은 속도라도 더 멀리 나아감을 즐기면서 말이다.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란 예기치 않은 상황, 혹은 변경된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적응시키기 위해 두뇌가 발휘하는 능력을 말한다. 늘 해오던 제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느낄 때,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 해결로 이끄는 능력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단단한 대지일 때도 있고, 때로는 함께 흐르는 바다일 때도 있다.
예기치 않은 큰 변화 속에서도 힘을 내야 할 때와, 힘을 빼야 할 때를 분별해 사고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뭍에서든, 물에서든 자유롭고 유연할 것이다. 삶을 향한 모든 노력은 언제라도 의미를 지닐 것이다.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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