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

김승범 기자가 직접 발로 밟고, 손으로 만지고, 눈과 귀로 보고 들은 특별한 공간을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생각해보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찾아서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북촌, 감고당길, 삼청동이 만나는 한복판, ‘정독도서관’이 있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일 년 뒤 정독도서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처럼 학원이 많은 시기가 아닌지라 수많은 학생들의 치열한 공부의 현장이었다. 근대건축물 등록문화재 제2호가 될 만큼 오래된 건물과 풍경은 옛날로 돌려놓은 듯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

작년 봄, 고등학교 동창들을 이끌고 정독도서관을 찾아갔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인지라 이곳의 기억들이 많은 친구들이다. 도서관 정문을 지나 전경을 바라보며 약속이나 한 듯 멈춰 섰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미래를 준비했던 현장 앞에서 그때의 추억과 지나온 삶의 수많은 굴곡들이 교차했을 것이다. 불과 몇 년이었지만 어찌 됐든 지금의 모습을 갖는데 기여했을 시간과 추억이다.

지금의 정독도서관은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은 듯하다. 햇살이 드리운 창가에서 배움을 갖는 노년의 모습이 참 고상하다. 도서관 밖의 정원, 분수대, 등나무 파고라 등 공부뿐 아니라 사색하고 담소를 나누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복도와 계단, 열람실, 오래된 책장과 책상, 의자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지며 변한 건 ‘시간과 내 자신’뿐임을 본다. 공간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갈 수 있고 볼 수 있지만 지난 시간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건 경험과 기억이다. 그래서 점차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가 생각 속에 비중을 차지할 때가 더 많아진다. 과거의 실패나 아픔을 두고두고 얘기하는 사람은 현재의 모습을 과거에 기인하고 회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 또한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내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현재 없는 미래는 어떠한가. 미래에 대한 장밋빛 그림을 그리고, 그 꿈에 취해는 있지만 막상 발을 딛어야 하는 순간에는 두려움으로 머뭇거리고 미루고 포기한다. 마치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다가 두려움에 믿음을 잃고 물에 빠졌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감에 치우쳐 ‘현재’를 잃어버리거나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정신 차리라’는 말을 새로운 구호처럼 되뇐다. 깨어있지 않으면 몸의 습관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그 생각은 대체적으로 두려움과 욕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정독도서관의 시간 여행을 통해 ‘지금’을 사는 마음가짐을 다시 잡아본다. ‘지금’이 있음이 얼마나 축복이고 다행인지. 묶인 과거를 푸는 것도 지금의 결단이고, 미래의 불안을 넘어설 수 있는 것도 지금의 준비다. 멍하게 살다가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채고 사뿐히 동행하는 것이 다리 절며 걷는 위태위태한 나의 인생길에 지금을 살아가는 최선이리라.
정신 차리자!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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