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땅에서 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인생의 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육체의 한계로 인한 짐, 가족들 속에서 져야 할 짐,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져야 할 짐, 꽤 많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짐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무언가 모를 답답함으로 방황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잣대로 어떤 성공이나 성취가 우리를 만족시켜줄 것 같지만, 그것들은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아서, 거기에 기대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인간의 모든 짐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풀 수 없는 인간의 굴레
이 땅에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피할 곳이 없다는 게 고민입니다. 다윗도 원수들이 없는 곳으로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원수가 없는 먼 곳으로 날아가서 편히 쉬고 싶었을 겁니다. 다윗은 피난처 한 곳을 향해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오직 한 곳. 거기에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뿐이니까요.
다윗 이후,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도 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 서 있습니다. 여전한 인간의 굴레 속에서 무거운 짐,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헤매는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참된 동료는?
우리가 피할 곳, 우리의 짐을 맡기고 진정한 안식을 취할 곳이 어디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술과 쾌락으로, 스포츠와 취미생활로, 우상 앞에 절을 하면서 자신의 짐들을 맡겨보려 하지만 거기서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오히려 쾌락을 쫒다가 시궁창에 빠지기도 하고, 배금주의에 몰두하다가 막다른 길을 마주하여 난감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갈등과 또 다른 갈등이 상존합니다.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폭력과 분쟁으로 가득할 뿐입니다. 세상은 온갖 험담과 저주로 가득합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이 있습니다.
사실 다윗에게 공포와 배신을 준 사람은 멀리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장인이었고 아들이었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참된 이웃, 참된 동료는 누구란 말입니까?

다윗의 탄식과 고백에서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탄식과 고백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아봅니다.
다윗은 최악의 배신 가운데 고통의 짐을 지고, 결국 하나님께 나아와 탄식하며 자신을 구원하여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기가 막힌 위험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을 의지해서 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있는 원수들의 악행을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근거가 없는 것이나 사욕적인 내용으로 원수들을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죄악으로 정죄될 악인들의 실상을 고발하며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심판하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그곳은 틀림없는 피난처
하나님은 악인들은 반드시 심판하시고 멸하시지만 의인들은 반드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다윗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확인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힘든 일을 만날 때,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이런 때마다, 그분께 간청하기만 하면 모든 삶의 짐을 감당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짐을 맡아주시는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셔서 세상 사는 동안 그 짐에 눌려 살지 않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김교성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3대 담임목사로 2017년 11월에 부임했다. ‘원칙과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목회자로, 말씀중심으로 진실하고 깨끗한 교회의 모습을 지향하며, 인도네시아 영혼들을 품고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교민목회 현장에서 구현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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