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팔순의 심리학자가 보내는 편지

여든 해를 넘겨 살면서, 요즘은 생(生)의 문턱을 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나온 세월처럼, 신문을 펼쳐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아침도, 하루 동안 몇 사람이 산재를 당하고, 수입이 높은 젊은이들이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 한다는 기사가 눈에 띕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등록증’을 신청하는 사람이 겨우 2%뿐이라는 사실도 들려줍니다. 거의 절대 다수라 보이는 98%가 반드시 죽을 것이 확실한 자신의 최후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그냥 넘길 시간이 아니다
태어나 자라면서 살아가는 매 순간 그냥 넘길 수 있는 때는 한 순간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고3인 아이에게 올 해만 넘겨 ‘대학에 들어가면 다 된다’거나, 고시 준비생에게 ‘고시만 통과하면 모든 것이 네 손에 들어온다’고 하는 자세는 제대로 하나님 뜻에 맞게 사는 자세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도와야 하겠지요.
리브가의 몸속에서부터 싸우던 야곱과 에서를,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두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로 하여금 ‘야곱’ 같이 살도록 부모들이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세상의 출세를 위해 자녀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해서는 안되지요.
우리 자신이나 이웃의 소명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서로 지켜주고 협력해야 하기에, 서로의 특징을 잘 살피고 그 뜻을 제대로 바르게 파악하고 이행하는데 서로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긍정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
그렇게 이웃들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매 순간을 살면, ‘어느 때’가 되든지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몇 해만 더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될 거지요.
신뢰감(trust)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자기 잘난 자신감(confidence)이 아닙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사이에서 서로가 가지는 긍정의 신뢰관계를 말합니다. 부모가 일방으로 제공해주고, 지시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아이의 필요를 일방으로 충족시켜주고, 아이는 아무런 욕구의 표현이 없어도, 아니면 최소한의 표현에 한 치도 놓치지 않고 즉시 주어지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참기도 하지만, 서로 적절하게 알아주고, 협조하여, 서로 적절하게 만족스러운 관계를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다른 이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웃의 경험도 대단치 않게 넘겨버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을 보고도 눈 감고 지나치는 종교 지도자같이 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넘기는, 자신의 사명을 놓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항상 눈을 뜨고 이웃의 안색을 살피고, 귀를 열어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고, 몸을 움직여 이웃을 돌볼 기회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각자 다른 사명을 받았다
성경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하나도 같지 않고 다른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실 때도 모두 서로 다른 사명을 주셨고, 그 사명에 걸맞게 달리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각자 혼자만 잘 살라고 하신 적이 없지요.
그러므로 처음으로 익혀야 할 삶의 원칙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알고 신뢰하는 기초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 알아보고 믿는 기초 신뢰관계가 든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어른의 기준에 맞추기에 급급하여 서로 믿는 관계,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어른에게 사랑의 혜택을 받기만 하고, 나중에는 극단의 효성을 돌려드려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게 되지요. ‘어른의 기준’으로 칭찬 듣고 좋게 평가 받는 것에 매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 아끼기보다, 한 길에서 경쟁하며 자기만의 성취, 안위만을 추구하면서 서로를 도구화하는 경향을 조장하게 됩니다.
자라면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 기준만을 고집하면서, 서로 다른 점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이 함께 사는 것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게 됩니다. 아이 기르는 기쁨과 감격을 모르고 그저 힘든 것이라고만 여기고 피한다면 다음 세대와의 관계는 아예 기대할 수 없어집니다.

공감하며 소통하는 삶으로!
얼마 전 암 4기(수술할 수 없는 단계)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팔십 노인이어서 20% 약하게 처방한 약에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커다랗게 자리잡은 암 덩어리를 언제부터 품고 있었는지 몰라도 치료 이전에는 그리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았으니, 치료라는 이름으로 더 힘들게 살 이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아마도 태어나 부족함이 없이 보살핌을 받았고, 참을 만한 정도의 불편에서 계속 자라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부모와 할머니, 오빠들과 언니가 뭐든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뭐든 참지 않아도 되도록 대신 다 해주지도 않았고, 스스로 해내는 것을 기다려줬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알트루사 여성상담소의 심리학교실과 수요모임을 하면서 제대로 사는 주기로 돌아온 거지요.
우리 서로 듣는 귀, 보는 눈, 공감하는 마음을 잃지 말고, 언제나 이제, 여기에서 이웃과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잃지 맙시다.

문은희
(사)한국 알트루사 여성상담소 소장이며, 계간지 ‘책으로 만나는 심리상담지’ <니>의 편집인이다. 애타주의(愛他主義, altruism) 정신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바꾸고, 나아가 이웃과 더불어 착한 사회를 만들도록 ‘정신건강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