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 소설 <벽을 드나드는 남자>를 읽는 것으로 1월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그런 비극적인 삶을 스스로 경계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파리 몽마르트에 살던 등기청 하급직원 뒤티유욀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벽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그는 의사에게 ‘갑상선협부상피의 나선형경화’라는 이상한 병명을 진단받은 후 ‘쌀가루와 켄타우르스 호르몬’을 혼합한 약을 처방받고 돌아옵니다. 다만 “그 약을 일 년에 두 번만 복용하라”는 당부를 받은 채 말입니다.

능력에 들뜬 뒤티유욀은 먼저 자신을 학대하는 과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하루 23번씩 벽에 머리를 내민 모습으로 나타나 놀라게 했고, 결국 그 과장은 정신병원에 실려 갑니다. 이후 뒤티유욀은 은행, 보석가게를 자유로이 드나들며 절도행각을 벌였고, 범죄행각 이후 “가루 가루(garou- 늑대)”라는 글귀를 남기고 떠나 대중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부(巨富)가 된 뒤티유욀이 이런 명성에 싫증을 느껴가던 무렵, 담을 통과하여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게 됩니다. 이후 여느 때처럼 여인을 만나고 벽으로 통과해 나오려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머리는 벽을 통과했는데, 몸은 벽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비로소 그는 약으로 인해 자신의 특별한 능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몸은 갇힌 채 머리만 내민 삶으로 마감합니다.

“나에게도 뒤티유욀과 같은 능력이 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럴 자신은 없습니다. 이미 황금과 권력과 지위가 안겨주는 그 마력적인 힘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우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하늘의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딜 만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권력’은 ‘폭력’으로 변질되고, 능력은 ‘간악한 요술(妖術)’로 격하됩니다. 모든 힘과 권력은 그에 상응하는 고도(高度)의 도덕성과 무거운 책임감이 수반되어야 안전합니다.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 권력과 능력을 정중히 사절(謝絶)해야 합니다.

또 하나 궁금한 점은 ‘과연 뒤티유욀은 행복한 사람이었을까?’입니다.
물론 행복의 절대조건을 ‘소유’라는 ‘힘’에서 찾는 사람이라면 “그렇게라도 한번 살고 싶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는 먹이 때문에 죽고, 사람은 욕심 때문에 죽는다”라는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권면합니다. 삶은 ‘더(more than)’ 대신 ‘덜(less than)’을 추구할 때 자유로워집니다. 훌륭한 문장이 수식어를 첨가할 때가 아닌 덜 필요한 어휘를 잘라낼 때 완결되듯 말입니다. 그대가 드린 새해 첫 기도가 혹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 곧 지위와 권력과 금력을 주소서’라는 ‘비뚤어진 야망’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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