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마을과 숨쉬다 : 강서구 방화3동 '마을 공동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윗집, 아랫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살아간다.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문제까지 있어 이웃을 불편하게 여기는 정서도 있고,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어느덧 ‘동네, 마을’이란 단어가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며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사적인 영역은 존중하되 공적인 영역에서 모든 세대가 함께 건강한 마을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마을과 함께 ‘숨쉬어가는’ 멋진 이야기를 올 한 해 나누어본다. <편집자 주>

착한 국수로, 노인 일자리 창출 및 장학금 기부
쫀득하게 삶아진 국수 위에 멸치와 각종 재료를 푹 고아 만든 육수가 부어지고, 맛깔스러운 고명이 올라간다. 보기에도 넉넉한 양의 잔치국수, 딱 시골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가 말아주셨던 그 국수 한 그릇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한리필이란다. 4000원에 뜨뜻한 국수 배불리 먹고 가라는 마음, 강서구 방화3동에 위치한 ‘동화마을 잔칫날’ 국수가게의 마음이다.
한 번 더 놀랄 일이 있다. 동화마을 잔칫날은 마을 사람들과 지역 노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운영하는 국수가게. 운영수익금 전액은 노인 일자리 창출과 청소년들 장학금, 어린이들 꿈을 위해 사용한다. 그래서 가게 안 게시판에는 장학회 장학금 현황, 어르신 일자리, 지역 나눔 행사, 어린이 동화축제 등 지출내역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 가게가 세워진 2009년부터 지금까지 4억원이 넘게 기부되었다. 맛집으로도 알려졌을 뿐 아니라 국수 먹고 ‘착한 기부’를 하자는 이야기가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져 동화마을 잔칫날 손님은 외부에서도 많이 온다고.

노인을 대접하라
이런 ‘동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 중심에는 김동운 대표(강서구 시니어클럽 대표, 전 길꽃어린이도서관 관장·사진 아래)가 있다. 대대로 방화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방화동 토박이, 18대까지 500년간 방화동을 지켜왔으니 그곳이 고향이다.
“이 마을에 피난민이 많이 살았는데,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정월이 되면 그분들에게 떡국을 끓여 대접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기억은 기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30년 전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가 하루아침에 빈손이 되었고, 망가진 인생을 살다가 이겨내려 교회를 가게 된 후 하나님을 만나 결심하게 되었다. “돈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손 안의 물과 같아 움켜쥐려고 하면 다 흘러내린다. 그러니 있을 때 베풀자.”
1년 만에 김 대표는 상가빌딩 한 채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재기에 성공하며 어떻게 이것을 나눌 수 있을까 기도하게 되었다. 그때 방화 2단지에 독거노인이 돌아가신 지 보름 만에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아직도 이런 어르신들이 있구나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출석하고 있는 영신교회의 최규철 원로목사님과 독거노인을 돕기로 나섰습니다.”
김 대표가 재정을 대고 교회가 나서 음식을 만든 후 30개 독거노인가정에 ‘사랑의 건강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복지관을 통해서 조사해보니 1997년 당시 6단지와 2단지에 독거노인 가정은 400세대였다.
“그래서 지역 유지들과 교인들에게 손편지를 몇 백통 써서 보냈습니다. 배고픔도 힘들지만 하루 종일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우리가 자식이 되어 별미음식을 만들어 드리자고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 뜻에 동참해 1년 만에 283세대에게 사랑의 건강식을 대접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맛있게 드시는 노인 분들이 돌아가시는 상황을 보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귀한 분들이 그냥 스러지지 않도록, 그들의 경험들이 재생산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없을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노인 봉사단’이었습니다. 노인이 노인을 돕고, 노인이 아이들을 돕자. 그러려면 집집마다 두문불출하는 노인들이 집문 밖을 나서도록 해야 한다.”
노인정을 중심으로 잔치를 벌이고 대접하며 방화3동 노인연합회를 구성하려 하자 재정은 김 대표가 담당해도 음식을 만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지요. 교회버스에 건강식을 담당해주는 팀원들을 태우고 멀리 포천으로 갔어요. 실컷 갈비를 대접한 후 근처 산꼭대기로 차를 몰고 올라갔어요. 칼바람이 부는 곳에서 다 내리라고 한 후 ‘제가 앞으로 노인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잔치음식 준비 도와주실 분만 차타고 내려가시라고 하니 모두 차에 올라타시더군요. 하하.”
그때부터 노인정마다 방문해서 음식을 대접했다. 왜 이런 음식을 대접하나 의아하게 쳐다보는 노인들에게 김 대표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저희 동네에 어려운 아이들이 많습니다. 효녀 심청이가 어려서 어미 없이 살았는데도 효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젖동냥을 할 때 마다 내 아이처럼 품어주었던 어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지만 어머니들은 사랑이 있지 않으십니까. 동네 어려운 아이들이 그 사랑 먹고 자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줍시다.”
눈물을 훔치시던 어른들은 결국 노인연합회를 결성하였고, 2006년도에는 영신교회가 늘푸른노인대학을 만들어 노인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통놀이 짚풀공예, 이야기 보따리, 실버 순찰대 등 노인들이 문 밖을 나서 여러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어린이들에게 눈이 가더군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꿈과 고향을 마음에 심어줄 수 있을지. 2006년도에 길꽃어린이도서관을 위탁 운영하게 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도서관, 지역주민이 스스로 사랑하며 운영해나가는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역주민을 가족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바로 ‘강서어린이동화축제’입니다.”
이벤트 기획사 없이 동네주민의 재능기부로 지역 어린이 축제를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오감 만족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마을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와 가족이 총출동해서 만들어나가는 축제를 경험한 아이들이 나중에 연어처럼 고향을 기억하고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어린이들에게 마을이 주는 아름다운 추억은 큰 힘이 될 거라구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국수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축제를 열고, 태어나 짚을 만져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짚풀공예를 통해 세대간 소통을 하게 하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이 자라게 된 것이다.
“아이들 보면 콩나물시루 같지요. 물만 주는 것 같아도 어느덧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사랑을 주면 그 아이들이 또 자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것입니다.”

100세 시대, 모두가 어려운 이야기만 하지만 방화3동의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간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그러나 가슴으로 이야기하면 속지 않습니다. 최근 시니어클럽에서 일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수집처럼 참기름 가게, 만두 가게 등 전통방식으로 노인들만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자존감을 높여드리면 그분들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될 거예요. 불 꺼진 아궁이 같은 노인들에게 삶의 불씨를 당겨드리고 싶습니다. 녹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은 제 마음처럼요. 무엇보다 ‘함께’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세대간의 갈등이 문제가 되는 요즘, 이 마을 풍경이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가길 바라는 그 간절한 마음이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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