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크리스마스를 더 깊이 있게 하는 음악

   

12월엔 ‘메시아’를 들어야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예수 탄생의 예언으로 시작하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그만큼 이 시즌에 우리에게 친근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예수, 인간의 소망, 기쁨’ 등 바흐의 칸타타와 음률을 듣다 보면 벅찬 기운이 차분한 가운데 솟아 옴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각각 불리는 바흐와 헨델~. 이들은 서양 음악의 토대를 닦은 바로크 음악의 주역으로, 동시대에 태어나 아주 가까운 지역에서 살기도 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형태로 바로크 음악의 기틀을 완성해 냈다.
이들의 음악 자취를 따라 독일 동부의 도시들을 방문한다.

바흐의 생가 & 바흐 하우스, 아이제나흐
아이제나흐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의 감시를 피해 바르트부르크성에 숨어 독일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한 도시다. 그때부터 이 지역이 가졌을 개신교 신앙의 돈독함 가운데 1685년에 태어난 바흐는 성 게오르그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2백 년 동안 한 가문에서 음악가가 오십 명이나 나온 음악의 명문가에 ‘요한 세바스챤 바흐’가 존재한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타고남보다 성실함으로 작품마다 최선을 다한 노력파로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오르간과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합창단원으로도 봉사하다 개혁교회의 신실한 신앙으로 작곡을 시작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음률을 만든 노력을 악보 책 첫머리의 글들로 짐작할 수 있다.

바흐의 생가에 연이어 지은 바흐 하우스는 4백 년 전 그의 음악이 지금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지를 보여주는 음악실로 꾸며져 있다. 바로크 이후 고전, 낭만파 음악가들이 그의 음악을 따른 것과 함께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쓰인 토카타와 푸가(라단조)까지 살아 있는 바흐의 자료로 전시하며, 그 음악들을 바로 들을 수 있게 장치해 두었다. 여기서 왜 구노의 ‘아베 마리아’에 바흐를 붙이는지 알게 되었다. 이 곡은 바흐가 가사 없이 전주곡으로 만들어 평균율 책에 넣은 것을 샤를 구노가 듣고 너무 아름다워 멜로디를 만들어 ‘아베 마리아’로 자신의 미사곡에 넣었다.
또 피아노의 전신인 여러 형태의 쳄발로와 클라비아, 작은 파이프 오르간에서부터 근대의 오르간까지 전시하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해설과 연주도 들을 수 있게 했다.
이날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젊은 방문객 중 즉석에서 발 건반 누를 사람(footman)을 뽑아 오르간에 바람 넣는 페달을 밟게 하며 고음악과 친근하게 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해 뜨는 아침이 유난히 아름다운 아이제나흐, 신앙심이 깊은 바흐의 마을이었다. 여기서 라이프치히까지는 차로 두 시간 정도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는 바흐가 마지막 27년을 성가대장으로 지내며 대가족을 부양한 제2의 고향이다. 교회 요청에 따라 매년 여러 개의 칸타타를 작곡했다는 바흐는 이 시기에 대위법의 극치인 골드베르크 변주곡, 푸가의 기법 등 귀중한 작품들을 남기고 이 제단에 묻힌다. 음악 사조도 고전주의로 바뀌며 그의 이름이 잊힌 때,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발굴해 바흐의 경이로움이 새롭게 빛을 보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흐가 세상을 떠난 1백 년 후의 일이다. 성 토마스교회는 이것을 기념해 예배당 스테인드글라스 양쪽 중앙에 바흐와 멘델스존을 마주 보게 제작해 놓은 듯하다.
이후 바흐의 음악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무신론자에게까지 감흥을 주는 음악으로 알려지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니체다.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이런 말을 한다.
“이번 주에만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세 번 들었다네. 들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이게 되더군. 기독교를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도 여기서 복음을 느낄 거 같았다네.”
한편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바흐 음악을 ‘신께 드리는 예배이며 찬양’이라고 말했다.
기본에 충실한 연습과 그것을 뛰어넘는 시도를 계속한 바흐, 그의 작품은 연주 기교와 악기 배합을 최상으로 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보인다고 연주가들은 말한다.
이러한 자세의 음악이 계속 후대에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 아닐까.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지휘했던 성 토마스 소년 합창단은 지금도 세계 각 곳으로 초대되는 이름 있는 합창단으로 남아 있다.
라이프치히는 이후 멘델스존과 슈만, 바그너가 거쳐 가고 라이프치히대학에선 괴테와 니체가 나왔다. 그리고 메르켈이 여기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라이프치히대학은 세계적인 게반트하우스(음악센터)와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30여 킬로미터만 달리면 헨델의 도시 할레가 나온다. 바흐와 헨델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동시대에 살았다니.

헨델의 생가, 헨델의 도시 할레
헨델은 영국에서 그의 음악을 인정받아 귀화해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묻혔으나 할레에서 태어나 이 마을 성 마르크트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성장한 독일 사람이다. 일찍이 루터가 세 번이나 다녀가며 개신교로 변모한 앞선 문화와 역사의 도시 할레. 정시마다 울리는 교회의 차임벨도 ‘할렐루야’가 나오는 그야말로 헨델의 도시였다.
방문한 날, 마침 성 마르크트 교회에서 ‘정오 음악회’가 열려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거대한 파이프에서 나오는 바로크 음향은 여행자에게 쉼과 감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정통 파이프 오르간은 보이는 파이프 외에 훨씬 더 많은 수천 개의 파이프가 다른 방에서 복합된 소리를 교회당으로 뿜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웅장한 소리가 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르가니스트는 연주하는 동안 보이지 않다가 인사할 때야 겨우 구석에서 나왔다. 당시 교회는 오르간을 콘서트홀과 다르게 배치해 연주자는 가려진 상태로 ‘오로지 예배를 받드는 역할을 하게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레 음악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헨델 하우스에는 헨델의 자필 악보와 함께 건반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악기들로 연주회도 연다고 한다. 그때 피아노 소리가 들려 조심스레 올라가 보니 이번 주일에 연주할 사람이 연습하는 중이라고 했다.

메시아가 나오기까지
헨델은 젊은 날, 바흐와 달리 신앙을 따라 살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추구하던 음악가였다. 일찍이 고향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다 넓은 세계를 향해 이탈리아로, 함부르크로 떠난 헨델은 밝고 화려한 음악을 추구하며 영국으로 건너간다. 귀족과 왕족에게 어필하는 무대 음악을 만들어 호화스럽게 자유롭게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오페라극장 사업이 망하고 대중들에게도 외면을 당해 좌절감에 병까지 들게 된다. 일평생을 독일 경건주의의 틀에서 살아온 바흐와 비교할 때 매우 대조적인 부분이다. 그때 아일랜드 더블린 자선 음악 단체에서 예언서와 복음서를 중심으로 ‘메시아’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것이 1741년, 헨델의 나이 56세.

젊지 않은 나이의 헨델은 24일간 거의 잠도 자지 않고 먹는 것도 잊은 채 머릿속의 음들을 합창과 솔로로 오케스트라 악보를 만들어 적었다고 전해진다. 53곡, 354페이지의 감동은 그리스도의 탄생 예언으로 시작해 수난과 아멘 코러스로 맺으며 전무후무한 영감의 산물이 되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집중과 완성도로 초연부터 대성황을 이루었고, 헨델이 사는 동안 34회를 공연하는 중 영국 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 합창 때 일어섰다는 일화까지 남기게 된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다. 돈과 명성을 좇던 데서 공연 수익금을 가난한 이에게 기부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메시아’는 존재하는 모든 음악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음악의 하나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헨델의 삶의 자취, 메시아 이야기를 더 알려면 런던의 헨델 박물관으로 가보아야 할 거 같다. 또 아일랜드 더블린에 가면 ‘메시아’ 초연의 자취를 볼 수 있을 거다.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서울모테트합창단 12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흐 음악을 이렇게 잘 이해하고 소화해내는 합창단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드물다.” 바흐 음악의 거장 헬무트 릴링이 이런 찬사를 보냈다는 서울모테트합창단. 바흐와 헨델 이야기에 이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한 합창 음악의 실현을 위해 달려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단장이며 지휘자인 박치용은 “전문 음악인 민간 합창단으로 30주년을 맞기까지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것은 주의 은혜와 단원들의 헌신이었지요. 오로지 교회음악의 정통을 세워가기 위한 노력이었고요”라고 말한다. 물심양면으로 힘겨웠을 날들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점점 가벼워지는 문화 속에서 고전음악의 맥을 지켜내려는 장인(匠人)의 모습이었다.
지난해부터 마스터피스 시리즈를 열어 멘델스존의 엘리야로부터 헨델의 메시아, 바흐의 모테트로 이어진 특별연주회에서 이번 12월에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연주한다. 지난 6월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바흐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었던 이들이기에 이 성탄절에 바흐를 누구보다 더 감동 있게 들려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밝고 기쁨에 찬 서정적인 작품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편 서울모테트합창단은 헨델의 메시아를 새로운 싱어롱 형식으로 수년간 진행해 왔다. 객석을 성부별로 나누어 각각 앉게 하고 합창 부분을 함께 찬양하게 한 시도는 음악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에 대해 박치용 단장은 ‘올해는 바흐 연주로 싱어롱 메시아를 쉬지만, 다시 시작할 때는 참여자들에게 더 감격스러운 시간이 되게 하려 연구하고 있다’며 ‘싱어롱 관객들이 음악회에 임하는 준비를 하면 그만큼 그 시간이 귀하게 채워질 것’이라고 콕 집었다.
이것은 곡을 미리 연습하는 수고와 함께 그 연습 시간을 통해서도 은혜 맛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또 참여자로 객석에 올 때도 분위기를 살리는 차림을 하는 등 스스로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맑고 깨끗한 울림, 정제된 화음, 깊이 있는 음악으로 ‘최고 수준’의 합창단이라는 평에 걸맞게 이들은 문화예술상 등 여러 상을 받으며 다양한 무대에 서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음악의 성숙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바흐를 닮아있었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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