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크리스마스 퍼즐 찾기

사랑과 평화, 이는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이 둘 다, ‘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단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크리스마스는 ‘개인’의 행복과 평안을 넘어선 ‘공동체’의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찰스 디킨스가 발표한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했던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돌아보는 꿈을 꾸고, 주변 사람을 헤아리는 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이 나온다. 개인적인 욕망 실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평소에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크리스마스 기간에 재발견하게 된다는 이런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 <멋진 인생> : 존엄한 인간 개개인 헌신 통해 구원

크리스마스 영화의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엔 평생에 걸쳐 남을 위해 살아온 ‘죠지 베일리’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세계 여행과 대학 진학을 원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동생과 가족, 그리고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자기를 내려놓고 그렇게 이타적으로 평생을 보내왔지만, 그런 그에게 고민이나 갈등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때론 그런 자신의 모습에 화도 나고, 짜증도 내고, 답답해도 한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횡령범으로 몰리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죠지 베일리가 없었던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과 파멸, 그리고 향락과 타락이 판을 치는 끔찍한 사회를 체험한 그는 맘을 돌이켜 가족에게로 달려간다. 크리스마스 전날, 그런 그에게 이웃들은 오병이어와도 같은 기적을 선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천사 찬송하기를’과 ‘올드 랭 사인’을 부르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경제공황과 전쟁을 거치면서 찢길 대로 찢긴 공동체성과 양극화가 심화된 경제적 모순의 해결책으로, 영화 <멋진 인생>은 ‘이타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다. 제도와 시스템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 개개인의 헌신을 통해 사회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다.

◆ <패밀리 맨> : 치유의 해결책, 더불어 사는 삶

21세기 첫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패밀리 맨>(2000)의 주인공 ‘잭 캠벨’은 오로지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인물로, 크리스마스 기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일중독자다. 그런 그가 13년 전에 헤어졌던 애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인생을 체험함으로써, 인생관 자체가 변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부지런히 달려온 현대인들의 고독과 허무를 다루면서, <패밀리 맨>은 그 치유의 해결책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앞만 바라보고 사는 우리에게, 좌우 그리고 뒤를 바라보는 여유와 넉넉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그린 북> : 회복해야 할 가치, 포용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그린 북>(2018)은 미국 남부로 투어 공연을 떠나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 사이의 신분과 인종을 넘어선 우정을 보여준다. 엄격한 자기 절제와 매너를 갖춘 ‘돈’은 최상류층과 교류하는 저명인사이지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무형의 인종차별을 겪으며 서서히 고립되어 왔다. 그런 그가 비록 사회 중하류층이지만 가족과 이웃을 끔찍이 챙기는 ‘토니’와 생활하면서, 오랫동안 쌓아 올린 자신만의 성벽을 점차 허물어 간다. 결국엔 ‘토니’네 가족의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함으로써, 어우러지는 공동체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 이기적인 셈법만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그린 북>은 미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가치에 대해 외치고 있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혐오와 증오로부터 벗어나 어울리고 포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거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기적인 사람이 더 잘 살고, 이타적인 사람은 늘 피해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평생 유전자를 연구한 영국 생물학자 존 메이너드 스미스(1920-2004)의 ‘볏짚 들쥐 모형’이라는 실험을 보면, 당장은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존재가 살아남게 되지만, 그건 일시적·제한적인 경우고, 멀리 보면 이타적으로 협동하는 존재들이 부흥하고 번성한다고 나온다. 이기적인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연히 이타적인 자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타적인 자들 또한 그런 이타적인 자들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거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이타적인 자들의 모임이 공동체 번영에 더욱 유리하다는 거다.

성별·나이·지역·학력·경제력 등에 따라 전 방위적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혐오하는 시대를 우린 관통하고 있다. 남이 안 한 것, 혹은 못 하는 것을 먼저 또는 혼자 하고 싶은 욕망이 지배하고, 어울림보다는 배제와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다. 그래서 더욱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아야 할 때다. 예수가 신의 자리 머물지 않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다는 점에 주목하자. 예수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벽을 허물고, 주변에 녹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나’보다는 ‘우리’를, 더 나아가 ‘모두’를 생각하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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