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의 장사법>,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인플루엔셜, 2018년

집은 부천이었는데 동인천까지 아스팔트길과 철길을 전전하며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통학했다. 등하교 합쳐서 왕복 3시간을 매일 길에서 보낸 것이다. 외갓집이 인천이었는데, 나중에 힘들면 전학하기로 하고 초등학교를 들어간 것이 계속 이어졌다. 종점 하인천역에는 화교 학교가 있었는데 빨간 가방을 매고 다니는 중국계 아이들이 신기해서 따라가기도 했다. 그늘진 거리에는 험상궂어 보이는 부두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낮부터 잔술을 마시고 다들 얼큰히 취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닌 신흥국민학교는 당시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인근에는 신포시장이 있었다. 천식 때문에 시장 초입 ‘자선소아과’라는 병원을 다녔는데 주사를 잘 맞고 나오면 일종의 보상으로 만두라든가 닭강정, 그리고 공갈빵 같은 걸 먹었다. 지금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그냥 일상적으로 먹는 외식 메뉴 정도로만 생각했다.
외갓집은 해광사라는 절집 위편 산동네 꼭대기에 있었는데 돌계단을 내려와 아랫동네에 있는 신일반점으로 가는 길에는 ‘컴퓨터 미인’으로 불리던 배우 황신혜 씨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목욕탕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렸을 때 그녀의 또래 친구였던 외삼촌이 이국적으로 생긴 황신혜 씨 부모님이 외국인이 아니냐며 외할머니에게 물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짜장면을 먹었다.

외할머니가 장을 보러 가는 배다리 청과물시장을 좀 지나서 제물포 쪽으로 가다 보면 애증의 삼미슈퍼스타즈 프로야구팀이 홈으로 사용하는 야구장이 있었는데 근방에는 형이 다니던 광성중학교가 있어서 종종 주변을 배회하였다. 담장 밖 높은 언덕길에서 야구장 안을 들여다보다가 7회가 되면 공짜로 야구장에 들어갔는데, 만년 꼴지 삼미슈퍼스타즈가 18연패를 당하며 성난 팬들이 난동을 부렸던 장면도 생생하다. 팬들은 경기가 길어져서 허해진 것인지 아니면 또 승리를 하지 못해서 쓰라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속을 달래러 해장국을 먹으러 인근 평양옥으로 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이어서 직장에 들어갔다. 게다가 외갓집도 부천으로 이사하면서 이후 25년 동안이나 인천에 갈 일이 없었다.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나 할까. 그러다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나’ 답을 찾아가는 책 <노포의 장사법>을 만나면서 다시 인천을 떠올렸다[전국을 대상으로 다루지만 인천의 노포(老鋪 :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가 제법 많이 등장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천이 나의 기억과 합쳐질 때는 두 배로 공감하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천을 내가 전혀 몰랐을 때는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두 배로 아쉬웠다.

아이들과 함께 인천을 찾았다. 어떤 사람들은 명색이 광역시인데 이 정도로 퇴락한 구시가가 아직도 남아있냐며 이제는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곳을 배경으로 먹고 자란 나에게는 옛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풍경이 너무나 고마웠다. 예전에는 일상에서 스쳐 지났던 평범한 가게들이 이제는 나이를 훌쩍 먹고 비범한 노포로 버티고 서있는 모습 또한 사뭇 감동적이었다. 하인천역 차이나타운 근처에는 밴댕이회가 나오는 수원집, 소 한 마리에 1킬로그램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힘줄(스지)로 끓인 스지탕을 파는 대전집, 그리고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는 신일복집 등이 그대로이다. 신흥동 신일반점에서 유니짜장, 초마면(일종의 백짬뽕), 탕수육을 먹을 때는 “황신혜 씨가 외삼촌을 엄청 좋아했다는데 그 말이 정말일까 몰라” 하고 화제에 올렸다. 인천야구장이 있던 자리에는 인천축구전용구장이 들어섰는데 하여, 꼴찌 삼미슈퍼스타즈 대신 K리그 잔류왕 인천FC을 응원하였지만 ‘경기가 끝나면 평양옥에 가야겠지?’ 하고 마음은 이미 축구장 밖 노포에 가있었다.

“얘들아, 오늘 인천이 맛있었냐? 옛 시간을 더듬으려고 일부러 박물관에만 갈 필요는 없지. 다음 주에는 80년 된 소갈빗집 조선옥에 가보자꾸나. 거기에 60년 동안 일하신 주방장님이 계시다는데 그만두시기 전에 우리나라에 처음 갈비라는 요리가 생겼을 때의 맛을 함께 견학하자!”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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