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계교란물질 비스페놀A 안전기준 서둘러야

비스페놀A(bisphenol A)는 방향족 화합물입니다. 폴리카보네이트나 에폭시수지 같은 플라스틱 제조 원료로 음식용기, 젖병, 치과용 레진, 음료수캔 코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지요. 문제는 강력한 세제를 사용하거나 산성, 고온의 액체 속에서 비스페놀A는 녹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발생한 비스페놀A는 매우 낮은 농도에서 내분비계교란물질로 작용해 정자 수 감소나 여성화 같은 건강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캔 음료를 뜨겁게 데워서 마시지 말라는 경고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지요. 플라스틱 업계는 안전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아주 적은 양의 비스페놀A도 신경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되면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비스페놀A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각종 단말기에서 출력하는 영수증, 순번대기표에서 비스페놀A가 다량 검출됐다는 겁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감열지 분석 결과 시료 18개 가운데 8개에서 유럽연합(EU)의 안전기준을 최대 60배까지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 등 EU 국가들은 비스페놀A를 생식독성, 안구피해도, 피부 민감도, 1회 노출 특정표적 장기독성 1등급으로 각각 분류하고, 제조‧판매‧사용 제한물질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EU를 비롯해 스위스, 미국 일부 등은 감열지의 인체 안전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비스페놀A뿐만 아니라 비스페놀S에 대해서도 2020년 6월부터 규제합니다.

국내 영수증 발급 건수는 2015년 101억 건에서 2018년 127억 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지만, 감열지에 대한 안전기준은 없습니다. 거의 해마다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부처도 감열지의 비스페놀A 관리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영수증을 받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발급하는 업체나 상점 관계자들 또한 건강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서둘러 비스페놀A의 안전기준을 신설해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소비자단체들이 나서서 대형매장을 우선으로 비스페놀A로부터 안전한 감열지를 사용하도록 촉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합시다.

김익수
환경일보 편집대표이며, 한국환경정책학회 및 대기환경학회 이사, 대한설비공학회 홍보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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