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빠져있는 아빠 앞에서 조잘거리며 이야기하던 온유가 말했습니다.
“지금 아빠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고 건성으로만 대답하는 것 같아.”
마음을 들켜버려서 미안한 마음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의 진심은 이렇게 일상 속에서 새어 나옵니다.

이사를 하고, 가장 먼저 알아본 일이 온유가 다닐 피아노학원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온유에게 학원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빠, 그 학원에서 나는 혼나고 싶어.” “응?”
“오늘 학원 아이들이 원장님께 혼났거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 혼나긴 혼나는데, 무섭긴 무서운데, 그 가운데 뭐가 있는 것 같은 거야. 사랑의 꾸지람이라 해야 하나? 맞아. 가운데 있는 게 사랑인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한 번 혼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혼나면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했거든.”

사람들은 누구나 갈등을 만납니다. 만일 갈등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평온함도 유지할 수 있고, 더 거룩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상대를 지워내는 것으로 모든 갈등을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 갈등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 우리 인생에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갈등 속에 기억해야 할 ‘진심’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말로 대답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아빠의 대답처럼, 엄한 표정으로 학원 아이들을 혼내지만 아이도 알아챌 수 있는 선생님의 진심처럼, 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사랑, 진심이 있습니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에게 기도해줬더니 온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는 내가 꼭 잠들려고 할 때나, 학교 가려고 할 때,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안아주거나 기도해주는 것 같아.” 딸아이가 기억해준 시간이 고마웠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일상에 가득 쌓이겠지요. 만일, 서로에게 갈등이 생겼을 때나 인생의 험난한 풍랑 속에 흔들릴 때 이 시간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애정 어린 포옹, 사랑과 기도,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 담긴 진심을.

이요셉
색약의 눈을 가진 다큐 사진작가. 바람은 바람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그늘은 그늘대로 진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글과 사진과 그림으로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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