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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 년 전 스위스 이야기
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영향
[237호] 2019년 11월 01일 (금) 전영혜 @
   

1519년 스위스 취리히 한 예배당에서 마태복음 강해 설교가 예수님 탄생 족보로부터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가 2년 전 ‘오직 성경으로’를 포함한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었으나 교회들은 아직 교황청에서 내려오는 본문을 라틴어로 전하고 있던 때였다.
독일어로 신약 성경을 처음부터 풀어간 이는 울리히 츠빙글리(Zwingli, Ulrich), 그로스 뮌스터 예배당에 사제로 부임한 직후였다. 그로부터 6년간 신약 성경을 풀어간 츠빙글리는 영적 개혁뿐 아니라 삶의 실천적인 개혁까지 확장하여 5백 년이 지난 지금 종교개혁자를 넘어 스위스의 정신적인 지주로 여겨지고 있다.

츠빙글리의 개혁과 나라 사랑
그 당시 종교지도자인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타락의 길을 걸으며 금기시된 일을 은밀히 하고 있을 때 ‘면죄부’의 등장은 돈만 주면 죄를 쉽게 해결하게 하는 빠른 방법이 되었다. 그러자 몰래 가정을 꾸리거나 뇌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면죄부를 판 돈으로 사치한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는 일거양득을 누리고 있었다. 죄에 대한 적법한 처벌이 없어지며 신앙이 왜곡되어 가고 있음을 보는 뜻있는 지식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는 개혁에 대한 열망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서 저항하기 힘들었던 것은 교황청에서 올 신변 위협 때문이었다. 그때 바젤 대학을 졸업하고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은 츠빙글리가 이러한 비판에 실천적 의지를 세워 교회 개혁을 각오하게 된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순수하고 맑고 밝은 빛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야심과 지식으로 흐려지고 혼탁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뜻과 예배를 오직 성경, 하나님의 진리를 기록한 글, 열두제자의 글에서 찾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일찍이 용병으로 두 번이나 이탈리아 전투에서 싸운 츠빙글리였기에 자신이 경험한 전쟁의 비인간성을 자국의 청년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절절함도 여기에 보태었다. 또 흑사병이 창궐한 취리히에서 자신도 병에 걸려 죽음을 오가면서 인생의 허무함과 나약함을 깊이 깨닫는 중에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성경 중심의 개혁 정신을 세워나가게 되었다.
츠빙글리가 발표한 개혁교회(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맞서 개혁 운동을 벌인 개신교를 이름) 67개 논제는 바로 토론으로 이어지며 취리히시가 먼저 교황의 용병을 거부하고 츠빙글리의 개혁을 열렬히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의 개혁은 교회를 넘어서 스위스 사회의 변화까지 모색하여 빈핍한 사람을 위한 구제 기관을 만들고 교육 기관을 세워 바른 가르침을 주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스위스 북부지역으로 퍼져가며 10년 만에 독일 남부 스트라스부르까지 개신교 도시로 변하게 했다.

용병을 기리는 애처로운 사자상
아름다운 호수로 이름난 도시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은 스위스가 가난하던 시절, 청년들이 뛰어난 용기와 힘으로 이웃 나라 전쟁터에 용병으로 참여했다가 힘없이 죽어가던 슬픈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크 트웨인이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한 이 조각은 강인한 사자가 지쳐 쓰러진 모습이 스위스 용병을 상징하고 있어 자국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용맹, 충성, 의리’를 내세운 스위스 용병은 가장 훌륭한 군인들로 인정되어 교황청을 맡아 지키며 요청이 있을 때는 어디든 파병해 큰 수입을 얻고 있었다.
이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러 나간 스위스 용병들이 성난 군중들 앞에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사수하다 786명 모두 전사한 것을 기리고 있다. 부르봉 왕조의 문장인 흰 백합이 그려진 방패 위에 창을 맞고 쓰러져 있는 사자의 힘든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위스는 어떻게 달라진 걸까
적은 인구에 험준한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농업이 이뤄지지 않고 특별한 부존 자원도 없는 나라 스위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어떻게 지금의 아름다운 나라로 개인별 세계 최고의 소득을 갖게 되었을까.
주변의 강대국들 가운데 많은 위협을 받은 스위스는 1815년 영세중립국을 선언하며 주어진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청사진을 마련한다. 한번 훼손된 곳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하며 구역을 설정하고 구역별로 개발을 허락했다. 관광이 수입의 7%가 되는 요즈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개인의 집도 지역의 전체적인 구도에 맞춰 짓게 하고 디자인과 건축재에도 관여하는 등 자연과 삶의 조화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들을 만나보면 개개인도 산과 골짜기까지 자신들의 소유인양 한 폭의 어울림으로 돌보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야에 초지를 조성해 소를 키움으로 양식도 얻고 그림 같은 평안을 주는 것이 전형적인 이들의 삶이라 여겨진다. 여기서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산 아래 초록 풀밭을 보면 염소와 함께 노는 작은 아이 하이디가 나올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자연 속 생활의 전형으로 마음에 남아있어서다. 1880년대 알프스 산지가 배경이 된 이 소설에서 어린 하이디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살며 꽃과 염소를 사랑하는 정겨운 아이로 나온다. 아름답지만 고립된 산지 생활의 가난으로 그의 이모는 하이디를 독일의 한 가정으로 보내게 되고, 하이디는 거기서 새로운 도시 생활을 만난다. 그 집에는 병약해서 잘 걷지 못하는 클라라가 있어 함께 친구가 되어 지내면서 독일어와 기독교 신앙을 배운다.
그런데 집을 떠난 하이디는 시름시름 앓게 되고 의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나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어린 하이디가 마음속 그리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향수병에 걸린 거였다. 알프스로 돌아온 하이디는 산에서 뒹굴고 노는 가운데 몸을 회복하게 되고 옛 친구 페터에게 프랑크푸르트서 배운 독일어와 기도를 가르쳐준다. 할아버지도 하이디로 인해 점차 다정한 모습을 갖게 될 즈음, 클라라가 찾아와 자연에서 함께 지내며 걸을 수도 있게 된다는 따스한 이야기다. 하이디가 좋아한 들꽃들은 무슨 색이었을까, 폴짝폴짝 뛰어놀던 산마을은 얼마나 아늑하고 예쁜 곳이었을까. 병도 나을 만큼 순수한 산속의 삶이 그려지던 동화다.

주께 하듯 하라
스위스인들은 볼펜 끝 작은 볼에서부터 우주선 로봇까지 ‘최고의 품질’ 생산을 목표로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들의 전통 제조업인 정밀시계 산업이 금욕 정신과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말과 연결된다. 이런 자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들은 바로 츠빙글리의 종교 개혁기의 신앙적 기반인 ‘정직’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이라고 말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골로새서 3장) 말씀대로라고.
또 이들은 “많이 일하고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맡은 일을 잘 마치려 하면 시간을 염두에 두기보다 일 자체에 몰두하게 되어 자연스레 나타난 현상이라 한다. 그러다 보니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입이 오르게 되더라는 것. 이런 자세로 제약, 화학, 의학 등의 생명 공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은행과 보험 등 금융 서비스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츠빙글리로 새롭게 된 스위스
츠빙글리가 설교한 맑고 순수한 복음은 그 시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후에도 밝은 빛이 되어 영혼을 비추고 일찌감치 자연을 귀히 여기며 정직하고 철저한 삶을 살게 해, 아름다운 오늘을 만들게 됐다는 이야기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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