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후대를 잇는 방법 ‘삽목, 접목, 맹아 발생’

수령이 약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통일신라시대때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다 꽂아놓은 지팡이가 나무로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지팡이가 나무가 된다니, 무슨 요술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은행나무의 생리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무가 후대를 잇는 가장 중요한 매개는 씨앗이지만 씨앗이 아닌 방법으로도 번식시킬 수 있습니다(무성생식). 바로 ‘삽목, 접목, 맹아 발생’입니다. ‘꺾꽂이’라고도 부르는 삽목은 식물체의 뿌리, 잎, 줄기 등에 난 상처 부위에서 뿌리가 발생하여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나리, 사철나무, 벚나무, 무궁화 등은 삽목이 잘 되는 나무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은행나무의 경우, 쉽지는 않지만, 삽목이 가능한 나무이긴 합니다. 뿌리 내리는 조건이 맞으면 천년을 살아낼 수도 있는 나무입니다.

접목은 비슷한 종의 두 식물 조직을 접붙여서 하나의 개체로 키우는 방법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전공과목 실기시간에 접목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뿌리를 잘 내리는 가래나무를 대목(臺木)으로 삼고 열매가 우량한 호두나무에서 채취한 어린가지를 접수(椄樹)로 덧대어 꽁꽁 싸매주었습니다. 이때 두 나무의 관다발이 서로 잘 맞물리게 해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저는 평소 그리 꼼꼼하지 못했던 터라 특히 심혈을 기울여 접붙이기를 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이 있는 실습이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교회 마당에 심었고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교회 식구들과 함께 고소한 호두를 나누어먹을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자라서 맺은 열매는 호두가 아니었습니다. 접수였던 호두나무는 죽고 대목으로 썼던 가래나무(사진)만 살아난 것입니다. 십여 년 전에 심었던 그 가래나무는 현재 전봇대와 견줄 만큼 키가 자랐습니다. 그리고 가래나무의 열매는 교회 어르신께 두 알씩 지압용으로 나누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태풍 때문에 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한 홍릉 숲 속의 아름드리 비술나무가 쓰러졌습니다. 직원께서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 정리해두었는데 남아있던 비술나무 밑둥에서 이듬해 싹이 트더니 비술나무가 자랐습니다. 맹아가 자란 것입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움튼 생명은 아직도 건재하게 생장하고 있습니다.

삽목, 접목, 맹아 발달에 의한 번식은 생장이나 결실이 우량한 나무를 빠르게 증식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산림현장에서의 수요와 비용・효율을 고려하여 적용하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나무들처럼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어쩌다보니 뿌리를 내려 어엿한 큰 나무가 되는 생명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늠하는 쓸모 여부를 초월하여 강인하게 살아가는 생명의 신비가 경이롭게 여겨집니다.

박고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임업연구사로서 우리나라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 높은 산의 침엽수가 후대를 잇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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