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 히구마 아사코 지음,
박문희 옮김, 디자인이음, 2016년, 248쪽.


매일 아침, 출근 시간이 바쁘다. 김 위에 밥을 깔고, 반찬을 바꿔가며 올린 다음, 한 입에 쏙 들어가도록 싼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침대에 누워서 눈도 뜨지 못한 아이를 깨운다.
“입 벌려~!”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응석둥이를 키우려고 작정한 것처럼 나는 이런 식으로 다 큰 중학생 아이의 아침밥을 먹이고 있다. 늦게 일어나서 밥을 거르고 학교 가기 일쑤인 아이의 습관을 바꾸고도 싶었고, 엄마 뱃속에서 남들보다 빨리 나온 탓에 자라면서 잔병치레가 많았고,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작은 아이가 걱정되어서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키 작은 이유를 키 작은 아빠 탓으로 돌리지는 않겠지.

보통 이런 식의 일은 일회성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나는 이 일을 몇 달째 이어가고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키 좀 크도록 성장판 마사지를 해주라는 아이 엄마의 잔소리에는 한두 번 시늉만 하고 말았던 내가 아이 아침밥 떠먹여주는 일에는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스스로 알아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꽤나 많기 때문인 듯하다.

직접적으로 좋은 점은 아이가 편식을 하지 않고 골고루 밥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아침잠이 덜 깨서 몽롱한 가운데 입에 넣는 밥이어서인지 아이는 평소라면 전혀 젓가락이 가지 않았을 반찬도 얼떨결에 받아먹는다. 요즘에는 대표적인 어른 입맛 음식인 깻잎장아찌나 명란젓 같은 음식도 거부감 없이 먹을 뿐만 아니라 찾기까지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맛을 내는 과정이 복잡해지면 맛을 상상할 수 없게 되는데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나는 냉장고 안에 있는 기본적인 밑반찬과 다양한 야채를 최소한의 조리만 하거나 별다른 조리 과정 없이 먹인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지지 않고, 신선하고 담백한 야채에서도 다양한 맛을 느끼고 있다. “너무 맛있지 않냐?” 이러다 보면 아이가 식재료 혹은 요리 관련 전문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김칫국도 한 사발 절로 들이킨다.

간접적으로 좋은 점도 상당하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 보면 주둥아리를 벌린 아기 새들에게 먹이를 잡아다 먹이는 엄마 새, 아니 아빠 새의 기분이 된다. 해보면 안다,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심정. 살짝 재미마저 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밥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심지어 충성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아들에게서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세상의 아빠들이 가사 일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세상의 엄마들이 아이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하고 싶어서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을 구분했기 때문이라는 거대한 음모론마저 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떠오른다. 그러니 여자의 일이 주로 벌어지는 중심 공간, 즉 부엌에 남자가 흘깃거리기라도 하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섬뜩한(?) 말로 쫓아냈던 것일 테다.
매일 반복되는 가족의 일상을 책임지는 것은 엄마의 몫이라며 엄마를 응원하는 책 <엄마의 일>을 나는 오늘부터 ‘아빠의 일’로 바꾸어 읽기로 했다. ‘먹이는 것이 살아가게 하는 것’, ‘생각과 행동으로 성격까지 바꿀 수 있다’, ‘아이들도 집안일에 참여시키기’,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준다’ 등 소소한 일상의 살림살이를 통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느끼는 행복을 아빠인 나도 함께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럼 오늘은 부엌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볼까나. 하지만 언제부터 자리를 차지했는지 아무도 모를 법한 식재료로 가득한 냉동실은 여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금단의 영역이므로 손을 댈 엄두도 못 내고, 구입하고 세 번 이상 사용했으면 다행이다 싶은 최첨단(?) 요리 도구들은 작동 방법조차 알 수가 없으니 진열장 트로피마냥 바라만 볼 뿐이다. 하여, 나는 아이를 위한 오늘의 아침밥도 김 위에 밥을 깔고, 반찬을 바꿔가며 올린 다음, 한 입에 쏙 들어가도록 싸먹는 방법으로 만족한다.
“아들아, 네 엄마가 요리하는 가공육이나 냉동식품, 혹은 즉석식품에 현혹되지 말지어다. 너를 정말로 걱정하는 사람은 진정 아빠이니, 앞으로 네 키가 쑥쑥 자란다면 오롯이 아빠 덕인 줄로 알았으면 좋겠구나.”
전용 앞치마를 질끈 두르며 내가 요즘 하는 말이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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