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배려수업 / 선비에게서 배우는 ‘배려’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아내와 사별한 연암 박지원이 51세 때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그는 바쁜 공무 중에서도 어머니 없이 사는 자녀들을 위해 손수 고추장을 담가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자상한 배려다.
칼을 사용하는 사무라이 문화가 일본을 대표한다면 조선은 붓을 사용하는 선비 문화가 대표한다. 물론 ‘선비’ 하면, 갓을 쓴 채 고루한 권위와 체면만 앞세우는 이들로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긍정적인 눈으로 선비를 보면, 오늘날에도 이어받아야 할 소중한 ‘배려의 유산’이 많다.

공적인 성격이 강한 선비의 배려
배려는 공동체적 용어다. 나와 짝을 이루며 사는 이웃을 위한 마음이 배려심이고, 그 마음의 표현이 배려다. 특히 선비들의 배려는 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왜냐하면 학문에 매진하는 선비의 바람이 자기 몸과 마음을 닦은 후 남을 다스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선비는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에 힘쓴다.
선비는 자기 잇속에 치우치지 않고 대의(大義)와 공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대체로 사람은 유리한 일을 보면 잇속을 챙기려 하지만 선비는 잇속에 앞서 의로운가를 생각한다. 선비에게는 그만큼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선비는 그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초야에 묻혀 살아도 열심히 학문을 닦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다. 그럼에도 학문하는 선비라 하여 글에만 파묻혀 살지 않았다. 선비는 학행일치(學行一致), 곧 배운 만큼 행동하기를 힘써서 배움과 행함의 일치를 이루고 살았다. 선비는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여 사람의 도리가 자기 몸에 익숙하게 된 후에 남을 가르쳤으며,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적의 침략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다. 호남 유림의 존경을 받던 고경명은 나라를 위해 일어나 여러 고을에 격문을 띄웠다. 의병 6천명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함께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때 그의 격문이다.

“우리의 국방이 튼튼하지 못한 틈을 타서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 …소생은 비록 늙은 선비이지만, 나라에 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중류에 뜬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힘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이토록 선비는 평소 자기 수양을 잘하여 학문의 경지를 높였으며, 가정 다스림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백성을 살려 평화로이 살게 하려고 힘썼다.
차별이 뚜렷하던 시절, 황희 정승은 아무리 천한 종이라도 심하게 꾸짖지 않았고 매질하는 법이 없었다. 노비도 하늘이 낸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퇴궐하여 집에 오면 노비들의 아이들이 몰려와서 관복을 잡아당겨도 품에 안아주는 너그러움을 지니고 살았다.

대학자 퇴계 이황은 어떠한가? 퇴계는 27세 때 아내와 사별하고 30세에 안동 권 씨와 재혼했으나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어느 날 조문(弔問)을 가려던 퇴계가 흰 도포 자락이 해어져 부인에게 꿰매 달라고 했더니 빨간 헝겊으로 기웠다. 사람들이 상가에 어울리지 않은 도포를 보며 수군거렸으나 퇴계는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녔다. 아내의 모자람에도 그는 아내를 아끼고 존중하였다. 또한 둘째 아들이 결혼한 지 1년도 못되어 죽자 어린 며느리가 안쓰러워 친정으로 돌려보내 개가하게 하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배려였다.
매사에 꼬장꼬장하리라고 생각되는데도 크고 작은 배려를 실천하며 살아간 선비들의 배려는 아름다운 모범이요 모두가 이어받을 값진 유산이다.

개인적 배려 사회적 배려까지 이어져야
최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임산부 54.1%가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분홍색 임산부석이 마련되어 있지만 배려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구석구석에 배려해야 할 이들이 많고 배려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개인적인 배려가 사회적 배려까지 이어져야 한다. 배려 하나하나가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문화가 되고 예절이 되어야 한다.
배려의 대가이시고 선비 중의 선비이신 예수님께서는 황금률(Golden Rule)을 말씀하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31)

김안식
강서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회원으로 <다산의 목민심서와 선비설교자>를 비롯하여 다수의 시집과 칼럼집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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