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산 정약용의 독서법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박석무 편역, 창비 펴냄)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편지들을 번역하여 엮은 것으로, ‘다산의 독서법’이란 주제에 맞게 두 아들의 학문 정진을 바라며 대학자인 아비가 가르치고자 한 독서법의 정수를 찾을 수 있다. 그 중 네 가지만을 인용하여 싣고 짧은 이해를 덧붙인다.

봉건시대에 뜨거운 인간애로써 치열하게 지식을 탐구하며 살다 간 참지식인으로 다산 정약용을 평가하는 데 이의가 없다. 그는 정치경제학자로서 토지의 국유화와 공동경작 공동분배로 농민이 살길을 제시했으며, 행정학자이자 정치학자이자 사상가로서 애민(愛民)의 유학적 이상을 한층 진보시킨 인물이었다. 모함을 받아 유배당했으나 희망과 품위를 잃지 않고 불굴의 정신으로 학자의 길을 걸어갔다.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이 ‘위인’ 다산의 세계를 꿰뚫는 원천이 ‘독서’였다면 그의 독서법이 갖는 무게감 또한 와 닿지 싶다.

01. 선조의 행적과 일가친척을 알라
무릇 국사(國史)나 야사(野史)를 읽다가 집안 선조들의 사적(事蹟)을 보게 되면 즉시 뽑아내 한 권의 책에 기록해 두어라. 선배들의 문집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오래도록 하다보면 책이 되어 집안 족보 중에서 빠진 곳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방계 선조들의 사적이라 할지라도 함께 뽑아놓았다가 그분들의 자손에게 전해주는 것이 효도를 넓혀가는 방법이다(51쪽, 이하 모든 인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기준).

다산은 독서와 저술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다. 읽고 새기되 잘 정리하여 나중에도 일목요연하게 또 읽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이와도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서가 완성된다고 믿은 것이다. 또 독서로써 지식의 흠결을 보완하여 더 완성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불완전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독서를 통해 그것을 메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니 온고지신의 태도를 독서로써 이루고자 한 셈이다.

02. 진실한 시를 짓는 데 힘쓰거라
모든 시인들의 시 중에서 두보의 시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경(詩經)>에 있는 시 3백 편의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에 있는 모든 시는 충신 효자 열녀 그리고 진실한 벗들의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의 발로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기지 않은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차후로 시를 지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도록 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일이나 인용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
아무쪼록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여지승람> <징비록> <연려실기술> 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56-57쪽).

다산의 문학세계를 보여주는 ‘시론’이다. 읽고 짓는 일이 학자의 일이라면 그 중심은 마땅히 ‘좋은 세상으로의 헌신’이라고 믿었다. 문학이 역사, 정치, 사회와 닿아야 한다는 이 원칙은 다산의 독서법에서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극히 참여주의적 문학관인 동시에 모든 학문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좋은 세상의 건설에 기여해야 한다는 독서관이다. 어느 한 자리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의 형국이 되어버린 독서를 경계하는 셈이다.

03. 힘써야 할 세 가지 일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動容貌(동용모)], 말을 하는 것[出辭氣(출사기)],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正顔色(정안색)] 이 세 가지가 학문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71쪽).

나는 이 셋을 한 단어로 ‘진정성’이라 이해한다. 읽고 깨달아 행함으로써 좋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것. 세상을 바꾸는 독서의 힘은 ‘진정성’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폐족이 되어버린 자식들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되 희망을 놓지 않음으로써 인간다움을 세울 것을 가르쳤다. 그 길은 다름 아닌 독서이며, 독서를 하되 진정성이 흥건하여 세상의 변화에 헌신하기를 바랐다.

04. <거가사본>을 편찬하라
주자(朱子)가 말하길 “화합하여 잘 지내는 것[和順(화순)]은 집안을 질서 있게 하는[齊家(제가)] 근본이요,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起家(기가)] 근본이며, 천리에 따르는 것은 집안을 지켜나가는[保家(보가)] 근본이다” 했으니 이것은 이른바 네 가지 근본이다. … 너희들이 이런 편목에 의거해 정자나 주자의 책 <성리대전>이나 <퇴계언행록> <율곡집> <송명신록> <설령> <작비암일찬> <완위여편> 및 우리나라 여러 현인들의 기술 중에서 자료를 모아 편집한 후에 차례를 잡아 서너 권을 만든다면 좋은 책 하나가 될 것이다. … 이를 합하여 ‘거가사본(居家四本)’이라 칭하고 책상 위에 놓아두고 항상 읽는다면 어찌 심신에 크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부디 힘쓰도록 하여라(80-81쪽).

좋은 세상의 중심을 집안 또는 가문에 둔 다산을 본다. 가문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일은 이기적인 가족주의에 함몰해버린 우리 시대의 아픔과 또 다르다. 가문을 세움으로써 좋은 세상을 희망하는 다산의 희망이 이른바 ‘거가사본’ 편집에 담겨 있다. 거가사본으로써 가문을 세우고 나아가 한 인간의 수신과 천하의 평화를 이루는 교육의 장을 열고자 한 셈이었다. 다산의 독서는 이런 틀에서 더욱 튼튼하고 오래 가며 깊이 스밀 수 있었다.

박명철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