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주다 - overthinking 멈추기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위 시(詩)는 김현승 시인이 44세 되던 해에 쓴 <가을의 기도>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불혹을 넘긴 시인이 쓴 글이어서인지 이 시를 읽으면 가을이라는 단어와 함께 더 깊은 내면속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깊은 내면속 여행, 그러나 깊은 사색과 ‘지나친 생각’(overthinking)은 구분되어야 한다.

“STOP 1”
과거에 만난 한 어린이 내담자는 상담실에서 사용하는 치료용 모래가 담긴 상자 위에 수많은 피규어를 올려놓고는 복잡하고 혼돈 그 자체인 “제 머릿속 같아요”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다행히 통찰이 뛰어난 어린이여서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는 상담자의 말에 몇 가지 피규어만 남긴 후 “이제는 머릿속이 정리가 된 것 같아요”라면서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은 과거, 직업, 관계, 미래 등에 관하여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생각의 가지’를 쳐나간다. 밀가루 반죽을 부풀릴 때 사용하는 이스트처럼 생각은 계속 부풀어 올라 마치 뇌가 터질 듯 괴로우면서 우울하거나 불안해져 일상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회사에서 과장님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일을 부탁하신 건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면 ‘친구가 다른 때와 달리 나에게 조금 딱딱한 말투로 내 마음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는데 나에게 뭔가 화가 났나?’ 등 생각을 시작한 후 그것을 연이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가 되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일에 집중하는데 이것을 멈추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수면장애, 가슴 두근거림,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은 답답함, 손에 땀이 남, 만성 두통,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경험하게 된다면 ‘생각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에 대해 한 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STOP 2”
어떻게 생각의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 첫째, ‘알아차리기’
알아차리기는 현재 자신이 지나친 생각의 입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아이고, 내가 또 오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단계이다. 머리를 조금 쉬어주는 ‘실제적인 휴식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 두 번째, “STOP”을 외쳐라!
이 단계는 생각이 더 깊이 자리 잡지 않도록 생각을 중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속으로만 “STOP”을 외칠 수도 있지만 입으로 “STOP”을 소리 내어 말할 수도 있고, 드라마 혹은 예능에서 장면을 바꿀 때 손을 아래위로 벌렸다가 모으면서 슬레이트를 딱! 하고 치는 것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제 행동을 하며 멈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세 번째, ‘생각을 정리하기’
한 내담자가 너무 많은 생각으로 괴롭다고 해 종이에 적어 보도록 했다.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생각보다 내용이 몇 가지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해 도움이 된다. 또한 때로는 하늘에 맡기는 방법도 좋다. 사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 네 번째, ‘다른 곳으로 신경 옮기기’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우울하거나 불행할 때 자주 하게 되는 행동이 있는지 살펴보자. 필자는 이를 종종 ‘실행 지갑’이라고 부르는데, 카드지갑 속에 카드가 나열되어있는 것처럼 상상하면 된다. 한 장의 카드보다 상시로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면 더 좋겠다.
친구와 만나기, 수다 떨기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도 좋지만 걷기, 운동 등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이면 더 좋다. 어려운 방법이 아니지 않은가.
올 가을엔 지나친 생각으로 채워진 뇌가 아니라 위 네 단계를 기억하며 이성으로 가벼워진 뇌를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류경숙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코칭학 박사학위를 받고 강남GEM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으로서 상담과 강의를 하고 있다. 2007년부터 연세의료원 세브란스 완화의료센터에서 소아암 아동을 만나며 놀이치료와 수퍼바이저로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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