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두·공주은 종이조각 작가

종이를 조각한다. 아무 것도 없는 평면의 종이 위에 숨을 불어넣는다. 전체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각각의 그림은 부분별로 밑그림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입체적인 형태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에 따라 종이를 구부리고, 접고, 높낮이를 다르게 붙이는 등 복잡한 작업이 들어간다. 종이와 풀, 가위 또는 나이프 등을 가지고 만드는 조각으로, 예술작품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종이라는 특성상 정말로 정교하고 집중된 열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종이를 조각하여 평면의 이야기를 입체로 살려내는 작업을 해온 공진두 작가(53)와 어깨 너머 아버지의 작업을 보고 자라서, 이제는 번듯하게 자기의 이름을 걸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공주은 작가(22)를 만났다. 부산 사직동교회에서 열리고 있던 두 작가의 전시회 장소에서 만난 것. 종이조각 작품은 사진이 아닌 실제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데, 닮은 듯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자연스레 하게 했다.

독학으로 배운 종이조각
부산 출신인 공진두 작가.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부터 그림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대 진학은 못했어요. 전공을 살려 수학학원 강사도 하고 컴퓨터그래픽 전문가 1세대로 일했지요.”
클릭 하나로 휙휙 바뀌는 것이 어쩐지 지루하게 여겨졌다고. 그러던 어느 날 종이 일러스트를 보게 되었다. 색지를 오려서 조각조각 높낮이를 맞추어 예쁘게 표현한 일러스트는 물감 등 다른 재료로 표현한 작품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이후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종이조각 지도서’란 책을 만난 후 완전히 매료되었다.
“화방에 가서 사진 속 종이질감을 보고 유추해 종이를 사고 하나씩 따라 해보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적당한 도구가 없어서 만들어 쓰기도 했고요. 작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후 1년 만에 13점 작품을 놓고 교회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던 것이 2000년이네요.”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그래도 공진두 작가의 작품주제 중 가장 많은 것은, 모태신앙인으로 자라나 갖게 된 신앙의 질문과 자성의 목소리, 살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한 날 것 그대로의 ‘그리움’인 것으로 보였다.
“4회 전시회까지는 거의 성경테마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 이후부터는 동화를 쓰고 원화 개념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2012년까지 매년 전시회를 가졌어요.”

밀양에서 만난 어려움과 소망
종이와만 만나던 시간들. 2011년부터는 지인인 마리오네트 김종구 작가의 영향으로 나무를 만지게 되었다. 마리오네트 인형을 깎아 극단도 만들었지만 운영자와 작가와의 정체성 두 가지 모두를 갖고 가기는 어려워 극단은 접고 부산에서 2014년 밀양으로 삶의 자리를 옮겼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집을 짓고 목공예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1월 3일 집에 화재가 났다. 공진두 작가 작품은 공방에 있어 괜찮았지만 딸 공주은 작가가 단독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작품도 그리고 집도 화재로 전소되었다.
“너무 미안했어요. 딸에게. 그래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공주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하면 되지요.”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있어서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어요. 지금 작품이 더 마음에 들게 나왔어요. 4월말부터 다시 준비했지만 작품 개수가 좀 모자라 아버지 예전 작품과 합동전시회를 한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소식을 듣고 직장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공 작가의 아내도 다친 사람이 없고, 산불 안 났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것으로 족하다. 감사하다. 그리고 이것은 사진 찍어놓아야 한다”며 불탄 집을 사진 찍었다고.
한 3개월을 11평짜리 지인의 농막을 빌려서 살다가 100일 만에 다시 집을 지었다. 공 작가 가족을 사랑하는 각지에 흩어져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보내왔고, 무엇보다도 객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밀양 여수동 할머니 할아버지 주민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주었다.
“50이라는 나이에 새롭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3년 동안 살면서 할머니들 할아버지들께 인사 열심히 하고, 장갑 끼고 일하라고 참견하고, 믹스커피 타드린 게 다인데. 왜 날 도와주었냐고 물으니 ‘네가 잘하고 착했잖아’ 하시더군요.”
그랬다. 작품 앞에서는 철저했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산 것이 다였다. 딸과 아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그랬다. 주변 어른들이 그래서 ‘너희 부부는 아이들을 키운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들 스스로 컸다’고 하셨다.

아버지를 따라 종이조각작가가 된 딸
“아버지 전시회를 매년 보면서 커왔지요. 처음에는 그냥 별 생각 없이 봤는데 제가 손재주가 있는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좋은 거예요. 친구에게 팝업 편지를 만들어 줬는데 그 친구가 ‘넌 이쪽 길로 가면 좋겠다’고 권유하더군요. 대학 진학도 종이조각 쪽으로 하고 싶어서 찾아봤지만 관련학과가 없어서 진학 안 했어요.”
담담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공주은 작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뭘 강요하신 적이 없어요.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해서도 ‘네가 작품을 만들게 되면 네가 좋았으니 절반은 가진 것이고 누군가 그 작품을 또 소유하게 되면 그 절반도 끝난 거야. 몰입의 즐거움은 엄청나게 크고 너는 그것을 받았으니,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고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되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셔요.”
“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저에게 ‘무엇을 하든 쓰시겠다’는 마음의 확신을 주셨어요. 일단 걸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겠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예술가의 역할
앞으로 목공예와 종이공예를 접목해서 작업해보고 싶다는 공진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땅에 풀은 있어도 잡초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이름 모를 풀들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이지요. 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지만 그것에 매몰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작가로서나 아비로서나 풀처럼 살아가고, 또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듯이 그곳에서 그냥 자라갈 거예요. 그 나무그늘에 와서 누군가가 쉬고 갔으면 좋겠어요.”
“이 땅에서 무슨 역할을 할지는 자신의 몫이에요. 자신이 작은 빛이고 소중한 소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인지를 각성시키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점에서 예술가이시지요.”

종이와 나무를 만지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종이의 시간, 나무의 시간’을 묵상하게 된다는 공진두 작가.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신뢰의 마음으로 종이 속에 숨겨진 보물과 옹이진 나무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고 그 시간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가 딸 공주은 작가에게서도 보였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는 이 시간, 느려도 분명한, 곧지만 유연한 자세가 더 귀하게 보인다.

공진두 작가의 <행복한 나귀>(사진 좌)와 공주은 작가의 <겨울 나무>(사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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