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is Not over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지음, 민음사, 2018년, 280쪽, 14800원

어젯밤에 큰아이를 많이 혼냈다. 우리 집에 일명 ‘아빠 학원’을 차리고 중학교에 들어간 큰아이와 함께 공부를 시작했는데, 감기나 여행 등을 이유로 학원(?)을 수시로 빠지는 큰아이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축구라는 근사한 핑계가 하나 더 늘었다. 참고로 큰아이는 아직도 장래희망 란에 ‘축구 선수’를 적는다.

바야흐로 축구의 시절임에는 분명하다. 손흥민 선수가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면서 새벽잠을 설치게 만들더니, 이어서 ‘막내 형’이라고 불리는 이강인 선수를 필두로 20세 이하 국가대표 선수들이 연령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축구 열기에 불을 지폈다.
그 사이에 국가대표 평가전도 있었고, 여자 월드컵도 열렸다. 앞으로도 K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등 여러 빅게임들이 이어질 테고, 9월부터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지역예선 경기가 시작될 것이다.
따라서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학생에게 미치는 축구의 악영향(?)을 제대로 된 학원 선생이라면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혼내는 김에 그동안 망설였던 말도 꺼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그럼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니? 친구들이랑 공차고 뛰어 노는 게 너무 즐거우니까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모양인데, 요즘 축구 선수가 공만 차는 줄 아니? 손흥민을 봐라. 독일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도 아빠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이제 고등학교 졸업까지 5년 밖에 안 남았는데, 너는 학교에서 반대표 선수로 나서는 정도잖아. 그 정도 실력으로 축구 선수가 된다는 것은 어림도 없지. 네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래야 엄마, 아빠가 네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내내 지켜온 축구 선수라는 아이의 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것 같아서 내심 죄책감 같은 걸 느끼다가 동네 도서관에서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발견했다. 축구장이 네온사인마냥 반짝이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손쉽다’는 말은 있어도 ‘발쉽다’는 말은 없는 이 세상의 셈법대로 순순히 흘러가주지만은 않은 그 ‘뻐팅김(?)’에는 어딘가 감동스러운 구석이 있다는 저자 김혼비의 인터뷰처럼 이 책을 읽는 순간 축구는 여자 아니 그 누구라도 피치 위에서 공을 굴리며 숨이 넘어가도록 달리고 싶게 만드는 스포츠라는 게 분명했다. ‘큰아이 꿈도 우아하고 호쾌한 축구 선수였을 텐데….’
까짓것 할 수 없다. 꿈이 하나여야만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만 축구 선수인 것도 아니고, 축구 선수에 연령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에서도 나이 많은 아줌마들이 더 좋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며 종아리에 근육을 키우고,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검게 그을린 피부를 마다하지 않는 걸 보았는데, 정말 근사하더라.

아들아, 네가 벌써부터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축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더구나(이 말은 야구에서 쓰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러니 네 꿈을 쉽게 포기하지 말지어다. 대신! ‘아빠 학원’ 선생님으로서 하는 말인데, 축구 선수이자 축구장 짓는 건축가, 축구 선수이자 축구 용품 디자이너, 축구 선수이자 스포츠 기자, 축구 선수이자 축구장 잔디 전문가, 축구 선수이자 축구 게임 프로그래머, 축구 선수이자 운동생리학자 등도 될 수 있으니 공부도 열심히 하자꾸나.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아빠도 미술관에서 일하는 발레리노가 되도록 노력할게. 아, 오늘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리버풀의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를 너와 함께 듣고 싶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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