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7.9 화 11:55
 
> 뉴스 > 특집/기획 > people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승리의 홈런보다 더 값진 나눔의 홈런 치겠다”
(사)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이만수 감독
[234호] 2019년 07월 01일 (월) 이경남 기자 penshock@hotmail.com
   

말처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 앞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살겠다’ 큰 소리 쳐도 시간이 지나 약속이 희미해지는 것 같으면 자기 편한 쪽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만수(61) 전 SK감독(KBO육성부위원장·사단법인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은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의 야구인으로서나 신앙인으로서나 ‘약속을 지키며 사는 사람’으로 박수를 받는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국내에서는 유소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재능기부로 훈련 지도와 아마추어 엘리트 야구팀 피칭머신 기증, 장학금 수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여 소외된 라오스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주고 있는데,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 창단, 라오스 야구협회 창립, 라오스 야구장 건립 주도 등 국내외 야구 발전을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그것도 자비를 써가면서 말이다.
“50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니 나눠주라고 제 후원자이자 기도의 동역자인 아내가 말하더군요, 현역 시절 ‘헐크’로 불리던 때보다 더 바빠요.”
왜 그는 자비를 써가면서,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이 땅의 아이들과 라오스의 아이들을 야구를 통해 돕자고 호소하는 걸까.

헐크 혹은 최초의 사나이
한국 야구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 이만수.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 겸 1루수, 지명타자이자, 현역 시절 16년(1982~1997년) 동안 삼성에서 포수로 활약한 그는 KBO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로 손꼽힌다.
별명은 ‘헐크’ 혹은 ‘최초의 사나이’로, 한국 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 최초 100홈런, 최초 200홈런, 최초 트리플 크라운기록 등 많은 1호 기록들을 가지고 있기에 붙은 별명이다.
또한 선수 은퇴 뒤에는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지도자로 활약,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코치이자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88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SK 와이번스 수석코치에서 감독까지 맡았다. 찬란하고 치열했으며, 때로는 어렵기도 했던 야구인으로서의 인생.
“올해로 야구한 지 50년이 되는데, 선수, 코치, 감독에 이르기까지 야구인으로서는 누구나 갖고 싶은 타이틀을 지녔지요. 그러나 최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보다도 최근 5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가장 감사가 많은 시간입니다. 월급 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라오스 아이들을 만나다
라오스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감독시절 봉사 차원에서 한 번만 라오스를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야구용품을 많이 후원해주고는 ‘조만간 갈 수 있으면 가겠다’ 정도의 말만 했던 것.
“감독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동안 마음 고생한 아내를 위해 여행 계획을 다 세워놓고 예약까지 한 상태였는데, 아내가 제게 ‘당신, 수많은 사람에게 약속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라오스 안 가고 방황하고 있느냐’고 했어요. 이 한 마디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 11월 12일 혼자서 라오스로 떠났습니다.”

라오스란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동남아시아 중에서도 야구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나라였고,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였다. 처음에 라오스에서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왔던 한인교민을 통해 아이들을 만났는데, 반 이상이 맨발인,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었다.
“1년간 제가 훈련을 시키다가 이 방법보다는 이곳에 상주해서 가르쳐 줄 한국인 지도자를 파견하고 지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일단 선수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이 더 급선무였거든요.”
그래서 사단법인 헐크파운데이션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나섰다.
“저는요, 제가 도와달라고 하면 다 도와줄 줄 알았어요.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평생 사랑받았으니까. 그런데 라오스 아이들 돕자고 하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더라고요. 평생에 처음 거절이라는 것을 제대로 겪었어요.”
자존심 같으면 손가락질 받을까봐 못 했을 거다. 그런데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이 저를 선생님이란 말 ‘아짱’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들으면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요. 애들을 위해서 계속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6개월이 지나니 사람들이 이 감독의 진정성을 믿어주었다. 진짜구나, 이 사람.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오스로 한국인 코치를 파견할 수 있었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 세우는 중
기적은 라오스에서도 일어났다. 맨발의 아이들은 제대로 된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가 되었다. 40명으로 시작된 야구단이 이제는 150명으로 늘었으며, 여자야구팀도 지난 2015년에 만들어졌다. 무엇보다도 처음에는 빵을 준다 하니 모였던 아이들에게 꿈이 생긴 것이다.
“네 꿈이 뭐니?”
선수들은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꿈을 꾸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2016년 8월 부산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생애 최초로 정식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일부러 교회에 부탁하여 홈스테이를 하게 했다. 놀랍게도 선수들이 교인들의 집에 가서 자고 오더니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가정을 경험하고, 야구를 제대로 본 후 앞으로 선생님이 되어서 글을 가르치겠다, 병원 없는 지역에 가서 의사로 일하겠다, 정치인이 되어 이 나라를 변화시키겠다 등 구체적으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야구단은 2017년 1월, 제3회 한국-라오스 국제야구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2017년 7월 라오스 야구협회가 창립되어 이만수 감독은 부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라오스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라오스 정부로부터 야구장 4개 정도를 세울 수 있는 면적의 땅 2만1천여 평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그리고 DGB 금융그룹의 야구장 건설비용 후원으로 라오스 야구 역사상 최초의 야구장이 건축 중에 있어 올해 설립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제 꿈은 야구장 4개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라오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야구 중심지가 되어, 아시안 대회를 열고 세계대회를 여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희 한국야구도 1905년 미국 필립 질레트 선교사(P.Gillett)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황성기독청년회(현재의 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그 시초였지요. 그러나 지금 한국야구가 어떻습니까. 그래서 전 꿈을 꿉니다. 솔직히 제가 죽기 전에 그 날을 볼 지는 모르지만, 주춧돌을 잘 쌓아놓기만 한다면 후배들이 그 과업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라오스의 사역, 인고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그 전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포기했겠구나. 이제는 압니다. 어려웠던 순간들도, 그동안 지금까지 훈련시키시고 세우셨던 모든 것도 이 때를 위해서임을,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세우신 것임을 말입니다. 아무 것도 없고, 가장 낮아져 있을 때 주신 깨달음입니다.”

이 감독은 말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항로가 결정되는데, 어린 시절의 항로는 최고의 야구 선수였고, 그가 탄 배는 순항을 하여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선수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그러나 영광과 기쁨, 명예 등 ‘난 이제 다 이루었다’라는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저를 향한 팬들의 함성과 외침은 어느새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라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타고 있던 배는 새로운 항구를 향했습니다. 대한민국에 단 10명만이 가지고 있는 직업, 프로야구 감독. 화려해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자리였습니다. 영광스러운 순간과 고통의 순간이 공존했던 시간들. 그렇게 영욕의 항로를 지나 제가 탄 배는 어느새 야구로 사랑을 전하는 항로에 들어섰습니다. 벌써 5년 째 야구를 통해 수많은 야구 꿈나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는데요. 제가 탄 이 배의 항로의 끝이 어딜 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끝의 순간이 느껴질 때까지 그저 묵묵히 방향키를 잡고 달리겠습니다.”

선수생활을 하던 때가 인생 1막이라면, 미국 코치 시절이 2막, 한국에 돌아와 코치 감독 생활이 인생 3막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생 4막이라는 이만수 감독. 그 4막이 기대되는 것은 비단 이 감독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믿고 환호하며 격려하는 동역자들과 ‘아짱’을 바라보는 라오스의 선수들까지, 승리의 홈런보다 더 값진 나눔의 홈런을 기대하고 있다.

후원 및 사역문의 : 사단법인 헐크파운데이션 www.hulkfoudation.org

이경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표지 보기
특집-휴식을 보고 듣고 맛보다!
“감사 생활화로 선한 영향력 끼치...
여름휴식이 재창조(recreati...
“상처 받은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일상에서 길어올리는 '의미'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
우리가 배워가는 것들
특집-유익한 휴식, 필요한 휴식
인생 성찰, 우리 삶을 다시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