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하위 감각으로 치부되어 왔던 ‘후각’
인간의 오감 중 ‘시각’은 흔히 가장 이성적인 감각으로 추앙받았지만, ‘후각’은 하위의 감각으로 치부되어 왔다. 사실 후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거의 본능에 가까워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노골적인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는 후각을 있으나 마나 한 감각이자, 혐오의 대상을 찾는 감각이라고 깎아내렸다. 짐승에게나 필요한 감각이라는 거다. 동물들은 바닥과 주변을 킁킁대며 후각으로 모든 걸 파악한다. 따라서 자기의 체취를 남겨 영역을 표시하는 건, 동물 세계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반면, 인간은 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두 발로 서서, 먼 곳을 쳐다보며 시각적 인간으로서 문명을 개척해왔다.

짝을 찾는 방법만 해도 그렇다. 개들은 냄새를 맡으며 찾지만, 인간은 눈으로 보면서 관계를 설정해 나간다. 그럼에도 후각을 무시할 순 없다. 후각은 신분을 가르는 역할을 꾸준히 감당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후각만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감각은 없다. 이건 결코 하루아침에 자리 잡은 게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공공장소와 사적 공간, 남과 여, 노인과 아기, 부자와 가난한 자 등을 나눠왔던 게 바로 후각이다. 지위에 따라 체취가 다른 법인데, 그걸 무효화시키는 향수가 보급된다면 신분제도가 깨질 것이라고 걱정했던 고대 철학자도 있었다.

겉으론 시각적 존재로서 고고한 이성을 소유한 것처럼 뻗대는 인간이지만, 정작 속으론 동물과 다름없이 냄새를 근거로, 함께 할 건지 말 건지, 소유할 건지 버릴 건지, 있을 건지 떠날 건지를 결정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이럴 땐 그 어떤 평론이나 이론이 필요 없어진다. 합리적 사고가 마비된 채, 그저 본능에 따를 뿐이다.

냄새로 구별? 차별
영화 <기생충>은 전혀 다른 냄새를 지닌 두 집안, 반지하에 기거하는 백수 가족과 언덕 위에 사는 최상위 부유층의 만남을 그려내고 있다. 끼리끼리 모여 사는 요즘, 특히나 신분제가 부활한 듯한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이 두 집안이 조우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집합이 전혀 없는 이 두 집안이 만났을 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표현하는 행동 등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쓰는 언어, 생각하는 방식, 반응하는 태도 등이 다르다는 게 명확히 드러나고, 인물들은 자신의 신분과 처한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으로 일관한다.

일단 <기생충> 속 부자는 높은 곳에 산다. 즉 모든 걸 내려다보는 위치다. 마치 시선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이성적 부류처럼 보인다. 반면, 백수 가족은 바닥에 붙어, 아니 더 땅속으로 들어가 반지하에 산다. 습한 흙냄새 풍기는 전형적인 흙수저 집안이다. 바닥을 기어 다닐뿐더러, 불이 켜지면 탁자 밑으로 후다닥 숨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이 둘이 만났을 때, 가장 이성적인 감각기관이라 할 수 있는 시각(더불어서 청각까지)에 의존하는 부자들은 상대가 흙에서 기어 올라온 밑바닥 인생들이란 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시·청각은 속지만, 후각은 바로 구별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자들이 동물적 본능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거다. 거기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의 상태에 따른 호불호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주관적 근거로 구별하고 차별한다.

후각에 빠진 현대인
크리스천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이 익숙할 거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여러 종교에서 인간이 초월적 속성을 경험하는 걸 ‘향(香)’과 결부시켜 자주 설명해 왔다. 고대 종교의식에서부터, 현대 제사의식에 이르기까지 ‘향’이 중요한 매개체로 흔하게 사용되어 왔을 만큼 후각은 신비스러운 감각이다.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 감각인 만큼 ‘냄새’를 언어로 정확히 지칭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감각이나 사물에 빗대어 설명하거나, 그저 “OOO 같다”라고 할 뿐이다. 그런데 이성주의가 지배하는 계몽주의는 초월적 ‘영성’을 지워버리듯이, ‘냄새’ 또한 지워나갔다. 과거와 다른 현대사회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무취’ 아닌가.
실제로 우린 냄새를 지우기 위해 비용을 지출한다. 그러면서도 냄새를 통한 ‘구별 짓기’를 더욱 심화시켜나가고 있다. 냄새가 사라진 시대에, 오히려 냄새에 더욱 민감해져 버린 거다.
후각에 빠진 현대인. 바로 혐오의 대상을 찾아, 혐오의 시대를 연 파괴적 주인공 아니겠는가.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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