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현 교수의 ‘음식이 있는 치유’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은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에 내려가 엄마의 조리법대로 기억을 더듬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는 왜 왔냐는 고향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진짜 배고파서.”
한 끼 한 끼 자신을 채워줄 음식을 정성들여 만들어 먹던 혜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을 회복하며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현재를 사랑하고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음식을 통해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들과 그 기억을 살려내며.

사람들과 나눈 위로 한 그릇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코칭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난해까지 KBS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객원 교수인 위서현 교수(사진)가 아나운서 시절 쓴 <뜨거운 위로 한 그릇>에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음식, 기억, 사람들.
엄마의 미역국, 서러운 날 먹었던 비빔국수, 추억의 떡볶이, 허기를 채워주는 김치찌개, 아빠의 감자전 등.
“삶을 위로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음식이 주는 위로는 특별합니다. 한 그릇의 음식이란 생의 모든 감각으로 만나는 세계입니다. 음식에 깃든 마음을 본다는 것, 모든 감각을 관통한 음식이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선다는 것, 한 그릇의 음식으로부터 얻은 든든함이 하루를 살게 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니까요.”
개인사로 인해 삶이 너무나 무겁고 버거웠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너무나 힘들었을 때, 내면의 끝까지 내려갔을 때, 그 시절을 함께한 음식과 사람, 마음과 위로를 기억하여 기록했어요. 사람 손의 느낌이 그대로 드러난 음식을 통해서 ‘몸과 몸’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 위로 말이지요. 힘들었던 시기에 건네주는 ‘밥은 먹었니’란 말을 기억해요. 함께 밥을 먹었지요. 그 어떤 것보다 뜨거운 위로가 되었습니다.”

“들어가는 길에 비빔국수나 먹을까 했거든? 잘 하는 데 아는데, 갈래?”
다 비빈 국수 그릇을 보며 친구가 이제 됐다는 듯 눈질을 한다. …눈물이 날 만큼 매운 비빔국수를 먹는 동안 세상 근심들은 잠시 뒤로 물러난다. 아무리 시급한 인생 문제가 있다 해도 지금 내 입안에 번진 불보다 뜨거울까. …비빔국수를 열심히 먹느라 빨개진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그런 서로를 보며 우리는 여고생처럼 까르르 웃었다. 서러웠던 마음에 웃음이 번지고, 자신감이 한 뼘 세워진다.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밥을 먹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갔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에 어느새 식욕이 솟았으니 말이다. 살뜰하게 반찬과 찌개를 챙겨주는 친구를 보며 사라졌던 의욕이 되살아났으니 말이다. 내가 밥을 먹는 내내 천천히 먹으라고 몇 번을 말해주던 그 마음이 고마웠다.

손을 잡았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 돌아보면 ‘음식’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매개로 사람에게 위로받은 것이지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사람으로 치유된 것이지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서 사람을 피해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다시 세울 수 없지요. 분명히 주위에 섣불리 조언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그냥 밥이나 먹자고 손 내미는 사람들의 손을 꼭 잡으세요. 그 사람들 역시 자기만의 고통의 시간을 지나 진실한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을 겪으며 위 교수는 아나운서에서 전문상담사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7>, <독립영화관>, 클래식 FM <출발FM과 함께> 외 다수의 프로그램을 해온 위 교수는 방향을 바꾼 이유를 ‘아나운서는 자신이 조명 받는 삶이라면 상담가는 한 사람의 내담자의 삶에 빛을 비추는 것이니 이제 남은 생은 그렇게 써도 되겠다’ 여겼기 때문이라고.

“저는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에게 용기 있다고 말해줍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인 것이지요.”

“철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관계와 초월성, 소속감, 정체감, 지향의 틀을 꼽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커다란 고통을 마주하더라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 본연의 창조성, 언제나 돌아갈 나의 자리, 그리고 방향을 알 수 있는 지도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프롬은 소속감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뿌리내림이라고 보았고, 정체감 또한 사회와 관계맺음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버팀목처럼 지탱해주는 것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력과 소외, 분리, 외로움, 고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을 통해서 넘어설 수 있습니다.”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는 어떤 날이 찾아왔을 때,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날이 찾아왔을 때 ‘음식’이란 매개를 통해 자신에게, 또는 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살아있는 만남에서는 절로 치유와 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관계의 정점입니다. 그것은 쉽게 사라지는 열정과 달리 한 사람의 추함과 아름다움, 빛과 어두움을 모두 품에 끌어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끄덕임이며, 한 인생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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