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이의 나무읽기 <9>

매월 첫째 주일에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야외예배가 드려집니다. 4.16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416생명안전공원부지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지난 5월 예배 설교 본문은 마가복음 4장 13절~20절이었습니다. 씨앗이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중 어디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씨앗의 운명, 즉 싹이 트고 자라 열매 맺을 수 있느냐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한 이 본문의 내용은 제가 5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담당하였던 연구주제와도 깊이 관련되어있기에 그전보다 더 특별하게 읽혔습니다.

제가 연구하던 나무들은 주로 높은 산(고도 1,000미터 이상)에 모여 숲을 이루고 있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 상록침엽수입니다. 최근 이 나무들이 집단적으로 건강을 잃거나 죽는 일이 일어났는데, 현재 이들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은 넓지 않고 제한적입니다. 다 큰 나무가 여럿 죽는 것도 문제이지만, 저의 관심은 어른나무가 죽은 자리에 후대를 이을 어린나무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어린나무가 없으면, 그 숲은 존속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어린나무들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지리산, 계방산, 한라산 등 높은 산에 올라 관찰하고 연구했습니다.

특히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고유종인데, 우리나라에서 대가 끊기면 영영 고향을 잃게 되니, 애틋한 마음을 보태어 연구에 임했습니다.
이제 막 싹이 튼 어린나무가 밀집한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수분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돌밭 위에서도 싹이 트기도 했지만, 얼마 크지 못하고 뿌리부터 말라죽었습니다. 돌무더기 속에서 꿋꿋이 살아낸 어린나무는 돌 위에 발달한 이끼류의 도움으로 뿌리를 내려 결국 돌 아래 좋은 땅까지 닿은 것입니다. 덩굴류 식물이 밀집한 곳에서도 나무는 싹을 틔웠지만,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 에너지를 잘 받지 못해서 몇 년이고 똑같은 크기로 겨우 견디다가 결국 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어린나무들의 생존과 생장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으나,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러 나무가 모여 이루는 ‘숲’과 사람들의 ‘사회’도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저출산과 양육의 문제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고산지역의 상록침엽수림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와도 닮아 있습니다. 고산지역의 후대를 이을 어린 침엽수를 보기 어려운 이유는 각 어른 나무의 문제일 수도, 어린나무들이 자라갈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고산 침엽수림을 건강하게 지켜가는 것은 매우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마가복음 4장의 비유를 들어 워낙 험준한 산 속의 ‘땅’을 바꾸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오히려 섭리를 거스르는 주제넘은 일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바꾸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고, 그러한 터를 닦아가기로 결단하는 이들이 모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을 힘써 지켜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박고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임업연구사로서 우리나라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 높은 산의 침엽수가 후대를 잇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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