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캔터베리대성당을 참배하는 사회 각층의 대표 31명의 순례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설화형식으로 들려주는 24편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제6편의 <면죄부 판매사 이야기> 중 ‘금화는 누구의 손에 들어갈 것인가?’를 보면 세 청년이 ‘죽음’을 죽이려고 죽음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숲속으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황금을 발견하자, 그것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게 되고 이 비보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죽음이 사람을 죽였다’고 두려워합니다.
사실 세 청년을 죽인 범인은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가슴속에 간직했던 탐욕이 서로를 죽인 것입니다. 곧 “죽음이 직접 사람을 찾아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황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이용해 서로 다투게 하고, 결국 서로를 죽이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탐욕이 인간을 죽게 한다는 사실은 13세기 피렌체의 슬픈 역사가 방증해줍니다. 13세기 피렌체는 정치, 경제, 종교에 있어서 지중해 도시 중 가장 탁월한 도시였으며, 세례요한을 수호성자로 삼아 모든 주화에 세례 요한의 화상을 새겼던 신실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피렌체는 ‘악마 루시퍼가 세운 도시’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 까닭은 1216년 피렌체의 부온델몬테 가문과 아미데이 가문 사이의 혼인 파기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혼인 약속을 부온델몬테 가문이 파기함으로 수치를 느낀 아미데이 가문이 부온델몬테 가문의 청년을 살해하였습니다. 이에 부온델몬테 가문이 다시 복수를 함으로써 피렌체는 두 파로 갈라지게 되었고 이후 싸움은 120년간 지속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두 가문은 세례요한의 얼굴이 새겨진 신성한 화폐로 교황과 권력자를 매수하는 경쟁을 벌입니다. 불행한 것은 매수된 사제와 군인들이 반대파를 살해하는 일에 거리낌 없이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1348년 피렌체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도시인구 절반 가까이 사망하는 참극이 발생합니다.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끄러운 싸움이 계속된다면, 그 다음은 ‘절반’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인간의 죽음 가운데 가장 불행한 죽음은 ‘병사(病死)’가 아닌 ‘탐욕사(貪慾)死)’일 것입니다. 슬픈 것은 지금도 그대 곁에서 탐욕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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