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온유가 숙제 때문에 할아버지와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내내 예상치 못했던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가장 인기 많았던 물건은요?”
“배구공, 요즘은 공이 흔한데 할아버지 어릴 때는 학교에 공이 거의 없었거든.”
“그러면 한 학년에 몇 반까지 있었어요?”
“한 학년에 한 반 있었어. 한 반에 학생 수가 80명이었어. 교사도 한 명이었고.”
할아버지의 대답마다 온유는 자신이 상상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답이 나와서 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명이도 깔깔거리며 웃었지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뜻밖의 질문과 답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친구 중에 누구와 가장 친했어요?”
“그 친구 죽었는데?”
아이들은 그때부터 숨을 못 쉴 만큼 웃었어요.
친한 친구가 돌아가셨다면 어른들은 미안해하며 이렇게 말할 테지요.
‘아. 그러셨군요. 죄송해요. 그럼 다른 질문 드릴게요.’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질문을 이어갑니다. 뭐가 그리도 재미났던지 전화기 너머 아버지도 유쾌한 웃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신이 났습니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이지만 저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그 분의 이름, 학교생활,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아버지도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묻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 아이들을 통해 가족들을 인터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베개 아래 온유의 편지가 숨어 있었습니다.
“아빠, 제가 아빠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알지요? 모를 리는 없겠지만 만약 모른다면 지금 알려드릴게요. 저는 아빠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마음속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지요. 가장 가까운 이에게 당연한 마음을 전한다는 일, 얼마나 설레는 시간인가요.

이요셉
색약의 눈을 가진 다큐 사진작가. 바람은 바람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그늘은 그늘대로 진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글과 사진과 그림으로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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