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년 '바르게' 바라보기

중년이란 말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왜일까. 마치 사춘기 청소년들 이야기처럼 드라마에서 중년의 애정 갈등을 많이 다뤄서 그럴까.
그것은 실제로 호르몬 변화 때문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신체가 약해지며 질병,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삶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한다.

‘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림을 그린 동화 <마지막 휴양지>에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한 장면이 나온다. 상상력을 잃은 중년의 화가가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한 호텔을 찾은 모습이다. 타고 온 빨간 자동차와 대비되는 바닷가 모래 언덕의 쓸쓸한 호텔 건물, 옆으로 보이는 파도 이는 저녁 바다는 먹구름 하늘과 함께 음산하고 염려스러운 느낌을 준다. 마치 여기서 기대하는 휴식 가운데 상상력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심리학자 엘리오트 쟈크는 예술가들의 경우 창의적인 작업이 진전되지 않고 무미건조한 정신세계를 지니게 되면서 스스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는 게 바로 이 시기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년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 제목에 ‘마지막’을 붙인 듯하다. 그러나 이때를 잘 지내면 오히려 더 놀라운 창의적인 세계에 들어가게 됨도 말하고 있다.

중년에 변하는 호르몬
간혹 중년기, 갱년기의 불편을 이야기할 때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류는 성호르몬이 비교적 적은 사람들과 자궁을 수술한 사람들일 수 있다(랜디 허터 엡스타인). 많은 중년 여성은 에스트로겐이 떨어질 때, 흥분하게 하는 아드레날린이 상승해, 덥고 막힌 공간에서 허둥지둥(panic)하게 되는 등, 호르몬 변화로 온몸이 지배받는다고 말한다.
호르몬은 20세기에야 연구되기 시작한 분야로 1977년 미세한 측정을 가능케 한 로절린 얠로에 의해 추측으로 말하던 내분비학을 정밀과학으로 바꾸게 되었다. 뇌에서 호르몬 한 방울이 발사되면 특정한 분비샘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마치 요술처럼 여겨지다가 호르몬이 혈액을 통해 여행하며 필요한 곳에 멈추어 작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호르몬은 서로 영향을 주며 신체의 수요에 지속적인 공급을 하는데, 한 호르몬이 감소하면 잇따라 다른 호르몬의 작용도 방해받으며 신체 기능들의 저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 호르몬의 변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 주로 난소에서 분비되어 여성 호르몬으로 불리는 에스트로겐은 중년부터 감소해 노년까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여성의 생리에 관여하는 프로게스테론은 ‘중년에 급감’해 40대엔 에스트로겐이 우세한 균형을 갖게 되는데 그 영향으로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이 약해져 더 많이 지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게스테론 수치를 올릴 수 있는 식품으로는 아몬드, 캐슈넛, 브로콜리, 양파 등이 있다. 그러다 에스트로겐 수치도 많이 떨어진 갱년기가 되면 승마, 석류, 아마씨 등을 섭취하는 것이 매우 좋다.
이러한 호르몬 변화는 생활 속 식품들로 개선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으면 훨씬 수월하게 지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 테스토스테론 - 남성 호르몬이라 불리는 이 호르몬도 역시 중년기를 지내며 감소하는데 성적인 기능 외에 간, 근육, 뼈에도 영향을 주는 성장 호르몬이므로 그 수치가 낮아지면 신체에 전반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호르몬의 감소는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사람마다 연약한 부분으로 먼저 나타나 매우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남을 알아두어야 한다.

중년에 느끼는 고뇌와 두려움
40대가 되면 가까운 사람들의 질병과 죽음을 겪으며 의식, 무의식적으로 음울하게 된다. 그 기분을 회피하려 애써 외면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사는 건가’ 회의를 느끼며 고통 받는 것이 중년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하고, 심리학자 볼비는 마치 아이가 엄마와 떨어질 때처럼 40대를 지내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분리불안을 느낀다고 비유했다.
그것이 어둡고 칙칙해 직면하지 않으려는 회피의 모습들, 어떻게 나타날까.
생의 위협적인 존재인 죽음을 멀리하려는 방어로 나타나는 이차적 현상, 그것이 중년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 남성들의 경우 몸과 마음이 약해지며 알코올, 게임에 빠지기도 하고 병리적 증세를 보이며 신경성 환자가 되어 의사를 의존하려고도 한다. 한편 성적인 능력을 보여주려 외도를 하거나 자신의 나약함을 투사할 대상에게 연민으로 끌리기도 한다.
삶의 책임은 여전히 무거우나 육아에서 한숨 돌린 여성들은 막연한 낭만에 끌려 자기를 알아줄 사람과 멀리 떠나는 몽상을 하고, 외모에 대한 우울증적 관심으로 젊어 보이려 지나치게 애쓰게 되기도 한다.
게다가 젊은이 문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빈 둥지에서 경제적 문제까지 안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있으니, 과연 중년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성장하는 중년, 그 이후
중년은 그동안 외적인 방향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지적인 세계, 정신적 영적인 세계로 전환해 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기독교 상담가 정태기는 말한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력해지며 긴장감 가운데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훌륭한 사회인들로, 이때 인생을 점검하는 것은 중년 그 이후를 위해 매우 유익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융, 레빈슨).
남성들의 경우 의존적이며 수동적인 면이 발현하는 이 시기에,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고 받아들여 융통성 있게 새로운 자아를 위한 실현을 해 나갈 수 있다.
특히 자녀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충분히 함께 하지 못하고 일에만 열중한 아버지들은 자녀가 독립해 나갈 때 더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점 역시 스스로 인정하며 자녀와 인격적인 만남의 자리를 통해 친밀함을 쌓아 가면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년에는 무엇보다 자신의 장점, 재능, 활동, 특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그간 생업을 위해 달려온 노고와 업적을 칭찬하며 이제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봉사의 부분을 떼어 ‘자신을 위한 몫’으로 나누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면 이야기 치유가 시작될 수 있고, 혼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예상을 뛰어넘는 성취를 맛볼 수도 있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 깊이 있고 조용한 신앙생활은 중년의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호르몬 변화에 맞는 식생활, 보조 식품 섭취, 전문가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이제는 의미와 너그러움, 진실과 영원을 찾아가는 여행에 오른 인생의 중반, 죽음과 삶의 에너지 균형을 맞추고 애착과 분리의 원리도 이루어야 하는 성숙한 때를 바라보는 것이다.
마흔을 앞둔 단테가 쓴 신곡 가운데 중년을 그린 글귀다.

생의 중반에 나는
깊은 숲속에서 나가야 하는 방향을 잃어버렸네.
아, 그 두텁고 거칠고 야생적이고
두려움을 생각나게 하는
그 숲을 설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전영혜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